* 새 벽 을 여 는 5 분 피 정... 박 유 진 신 부 님 *

2006. 12. 2. 오전 1:09:40

글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 루카 19,41-42 ▒ 11월 23일 복음말씀에서 ◈ 
 

 


 
▒┃얼마나 황홀한 슬픔이랴 / 수선화(문화원 카페 특별회원)┃▒

몸져누운 날엔
슬픔이 까닭 없다

세상의 한 귀퉁이로 밀려나
정물화처럼 박혀버린 일상

유독,
사람냄새가 그립다.

곰곰이 떠올리면
모두가 고운 얼굴
선한 눈빛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인연을 맺고
한 세상 같이 한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오늘 같이
기온 뚝 떨어지고
몸져누운 날

사람이기에 갖는 슬픔 또한
얼마나 황홀한 슬픔이랴



 

 

┗▶『해설과 묵상』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는 예루살렘을 향한
성대한 입성(入城)과 함께 시작된다.
우선 예루살렘 동쪽 올리브산 너머에 있는
벳파게와 베다니아에 도착하신 예수께서는
나귀를 타고 제자들과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올리브산을 넘어 예루살렘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중턱에 이르러 행렬을 멈추셨다.

바로 이곳, 올리브산 정상에서 가파른 경사를 따라
키드론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예루살렘 성도(聖都)가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에 "도미누스 플레빗"
(Dominus Flevit, 주님께서 우셨다)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전 하나가 세워져 있다.
우리에게는 "눈물성전"으로 알려져 있다.
5세기부터 수도원이 있었던 이 자리에 세워진
"눈물성전"은 1955년 이탈리아의 건축가
안토니오 바루치가 설계하여 완공한 것으로서
성전의 지붕을 눈물방울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정화 사건 사이에 삽입되어,
눈물과 한탄으로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내용의
오늘 복음은 루가만이 전하는 고유사료이다.
신약성서에서 예수님의 울음에 관한 보도는
모두 세 곳인데, 라자로의 죽음을 향한 울음(요한 11,35),
하느님께 큰소리와 눈물로 기도하고 간구하심(히브 5,7),
그리고 오늘 복음의 예루살렘을 향한 울음이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비통한 눈물과 한탄은
그분의 착잡한 심정을 헤아리기에 충분하다.
예수를 반대하는 예루살렘 성도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주님의 영광은 없다.
기적의 시간도 모두 끝이 났고,
평화의 날들도 모두 지나갔다.
예루살렘은 하느님께서 그들을 구원하러 오신
때마저 놓치고 말았다.
그에게 남은 것은 전쟁과 멸망과 심판이다.
실제로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은
로마제국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율법에의 충성이 예수께 대한
믿음과 회개를 대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오히려 율법만능주의가 그 믿음을 방해하였다.
예수님의 비통한 눈물과 한탄이
오늘날 우리 자신을 향한 것일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상대 신부』


 





┗▶『묵상기도』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셨던
당신의 여행이 끝나갑니다.
마지막 숨을 고르는 시간,
당신은 눈물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그토록 숨가쁘게 달려온 곳이건만
대지의 무엇이 당신을 울게 하십니까.

주님, 참으로 건방지게도
이제 저는 당신의 눈믈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렵습니다.

혹시라도
교회의 꿈을 향한 여정에서
더러 숨긴 가슴으로 울어야 했던
슬픈 눈동자에 담긴 교회가
당신이 바라보는 예루살렘일까
두려운 것입니다.

당신이 눈물을 흘리셨던 자리엔
화려한 성전이 세워졌고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당신이 바라보신 세상엔
무수한 교회의 십자가가
군대의 창칼처럼 가득 솟아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당신의 눈물은 계속됩니다.

주님 오늘은
당신의 눈물 앞에
기도조차 피해가고픈
슬픈 마음을 봉헌합니다.

아멘.


『Squ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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