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강영구 루치오 신부(마산교구)-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러 도시를 내려다보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한탄하셨다. “오늘 네가 평화의 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너는 그 길을 보지 못하는구나.
그대에게
사제관 앞뜰의 소나무는 언제나 소나무요, 느티나무는 언제나 느티나무입니다. 소나무는 늘 소나무답고, 느티나무는 늘 느티나무답습니다. 소나무가 소나무답지 않거나 느티나무가 느티나무답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언제나 소나무다운 소나무는 아름답고 느티나무다운 느티나무도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이름에 걸맞게, 자신의 지위와 직책에 걸맞게 처신하며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사제(司祭)라는 직책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밝음(一明-루치오)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름에 걸맞은 삶이 나를 나답게 합니다. 나의 나다움, 사제의 사제다움, 교회의 교회다움이 하늘나라(天國)의 시작입니다. 어머니의 어머니다움, 아버지의 아버지다움, 자식의 자식다움이 가정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만듭니다.
예루살렘은 ‘평화(平和)의 도시’입니다. 예루살렘이 예루살렘다우려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평화를 사랑해야합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욕망의 도시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배척하는 예루살렘에는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신(이사야 48,18) 배신과 반역, 증오와 원망, 분열과 갈등의 파도만 출렁입니다. 욕망에 눈멀어 평화의 길을 보지 못하고 파멸을 향해 가는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고 예수님은 눈물 흘리며 한탄하십니다.
오늘도 당신다움을 잃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一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