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대교구 박영식 신부-
전례력 마감을 앞두고, 교회는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바빌론 유배 이후 서서히 싹트기 시작한 종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표현하면서 반드시 종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사람들은 정치·사회·경제·도덕적 생활 전반에 걸친 혼란과 고통을 겪으며 새 하늘과 새 땅이 실현될 날이 임박했다고 믿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존 사회의 가치와 불의를 고발하고 이를 하느님의 정의 안에서 개혁하려고 하면서 다윗왕정의 회복을 간절히 기대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죄와 악으로 물든 세상에 초연한 자세를 취하면서 다가오는 우주의 새 창조를 통해 세상의 완성을 열망했습니다. 그래서 죽음의 세력을 굴복시키는 하느님의 날을 기다리며 올바르게 산 사람들에게 커다란 보상이 있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악한 현실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을 가져다 줄 종말이 언제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종말 사건을 계시하시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메시지를 숙고하고 이를 사는 것입니다.
코헬렛(전도서의 저자)은 “하느님께서는 의인도 악인도 모두 심판하시니, 모든 일과 모든 행동에는 때가 있기 때문이다”(전도 3,17)라고 하면서 인간이 하느님의 때를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평가하는 발문의 저자는 “하느님께서는 좋든 나쁘든 감추어진 온갖 것에 대하여 모든 행동을 심판하신다”(전도 12,14)라고 하면서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심하고 깨어 있어야”(마르 13,33) 한다고 경고하십니다. 지금 당장 하느님의 심판이 있지 않다고 악한 일을 계속하면서 죄를 짓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는 끊임없이 죄를 지으면서 교회에 오면 하느님께 두 손 모아 빌며 죄의 용서를 청하는 제사를 바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는 분명히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도처에서 시련과 가난, 소외와 억압을 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통이 없는 초월적 세계만을 갈망하며 현실의 고통을 견뎌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악의 세력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온 세상에 평화를 가져오실 분은 예수님뿐임을 믿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시어 악한 세상을 이기는 지혜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고통’ 안에서 예수님의 고통의 신비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 각자가 ‘지금 여기에서’ 밝은 하늘처럼 빛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