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선 이유’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1. 오후 11:59:02

글자

나해 연중 제 33 주일

2006. 11. 19.

중계본동.


다니 12, 1-3.

히브 10, 11-14, 18.

마르 13, 24-32.


중계본동에서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이기 때문에 제가 강론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없지만, 짤막하게라도 강론을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묵상할까 합니다.


“솔직히 나는 내 죄를 안다

나는 거품이었고 부실했다

나는 지금 누구도 탓하지 않고

내 직장이 내 가정이

내가 쌓아 온 모든 것들이

발밑에서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있다

이건 분명 내 탓이다

나의 불찰이고 나의 무능이다”


박노해 시인의 ‘내가 나선 이유’라는 시입니다. 한 해를 갈무리하면서(이제 다음 주가 연중의 마지막 주간이다) 이 시가 눈에 들어옵니다. 모두가 나는 죄 없다고 외칠 때, ‘나도!’라고 끼워서 외쳐댔던 저입니다. 이것이 안 되는 것은 그것 때문이고, 요것이 안 되는 것은 저것 때문이라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나를 비하하면서 한없이 무능한 자로 몰아가는 것이 어찌 신앙일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내 탓이라고 말하는 그 안에 진정 겸손이 묻어나 있다면,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더 큰 능력을 찾는 몸짓일 것입니다.


세상이 허물어지는 것이 내 탓임을 알게 될 때 세상을 세울 수 있는 힘도 내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탓도 아니면서 자기 탓이라고 십자가를 지고 가던 저 발걸음을 생각해보면, 은근히 내 탓도 그 십자가에 얹어버리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올해 그렇게 또 그분의 십자가에 걸터앉아 베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생은 다 써야 하는 것이 법칙인데, 쓰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버텼으니 쓸데없는 쓰레기의 무게만 더해졌습니다. 더 쓴 사람, 덜 쓴 사람, 할 것 없이 모두다 이생을 마치게 되고, 덜 쓴 사람 더 쓰도록 천국의 문턱에서 기워 갚아야 한다는 것을 언제쯤 삶으로 깨달을 수 있을지. 다 써야 채워지는 천국의 법칙을 진정으로 깨닫는 시간이길 연중의 마지막에 서서 기도합니다.


그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기에,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지 말고, 언제일지 모르는 그 시간에 허둥대지 않도록 더 치열하게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내가 나선 이유’라는 시처럼, 이 세상은 내가 나서도록 되어 있는 삶이란 것을, 내가 주연인 드라마라는 것을 깨닫고 좀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게 되길 기도합니다. 내가 나서야 합니다. 주님은 나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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