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이기양 신부님

2006. 12. 1. 오후 11:54:58

글자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제 1독서 : 다니 12,1-3 (그때에 네 백성을 구원을 받으리라.)
제 2독서 : 히브 10,11-14.18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의 예물로, 거룩해지는 이들을 영구히 완전하게
                             해 주셨습니다.)
복    음 : 마르 13,24-32 (사람의 아들은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신도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세워진 교회입니다. 중국인들을 위해 쓰여진 『천주실의』, 『칠극』 등의 예비자 교리서가 중국을 왕래하던 사람들에 의해 이 땅에 들어오게 되고, 이에 관심을 가졌던 실학자들에 의해 천진암 주어사 등에서 천주학 연구가 시작되었지요. 바로 이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이 땅에 신앙으로서의 천주교가 뿌리를 내리게 된 것입니다.
   1784년 이승훈 베드로가 북경에서 조선인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하면서 한국 천주교회가 태동되는데 이승훈을 북경에 파견하신 분이 이벽 세례자 요한 성조입니다. 이벽은 이승훈을 찾아가서 간곡한 부탁을 합니다.

    “이번에 자네가 북경에 들어가게 된 것은, 하늘이 성교의 참된 뜻을 가르치시고자 하시는,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좋은 기회이다. 이 교리만이 성현의 도이며, 만물을 만들어낸 주인인 천주, 오직 하나뿐이고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는 천주께 봉사하는 참되 교이므로 구라파 사람들은 이것을 가장 높이 받든다.
   이것을 빼 놓으면 우리들은 아무 힘이 없어지고,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어, 마음을 가다듬을 수도 없고, 만물을 연구하고 알아낼 수도 없다.…(중략)…이번 자네가 북경으로 가게된 것은 참으로 천주께서 우리의 이 작은 나라를 불쌍히 여기사 우리를 구하고자 하시는 섭리이다.
   북경에 들어가거든 곧 천주당에 가서 구라파의 선교사를 만나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물어서 교리의 깊고 참된 뜻을 밝히며, 천주교리의 실천 방법을 자세히 살피고, 또 필요하고 중요한 교리에 관한 책을 모두 가지고 돌아오게. 인간이 죽느냐 사느냐, 그리고 영원토록 행복하느냐 불행하느냐가 달린 큰 문제가 자네 손에 달려 있으니, 경솔히 행동하지 말고 몸가짐을 특히 주의하라!”(유홍열 저, <한국 천주교회사> 제11장 ‘이승훈의 입연(入燕)과 조선 천주교회 창설’중에서) 

   이벽의 부탁을 받은 이승훈은 세례를 받고 귀국하면서 수십 종의 교리서와 성상, 성화, 묵주 등을 가져와 이벽에게 주었고, 이벽은 이들 교리서를 열심히 습득하고 묵상하고 나서 이승훈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훌륭한 종교이며 참된 도이다. 천주께서 우리 백성을 불쌍히 여기사 우리들로 하여금 세계를 구하고, 죄를 보속하는 은혜에 참여하게 하고자 하심이다. 이것은 천주의 명령이니 우리들은 그 부르심에 귀를 막을 순 없다. 모름지기 천주교를 널리 펴서 복음을 온 세상에 선전해야 한다.”(유홍열 저, <한국 천주교회사> 제11장 ‘이승훈의 입연(入燕)과 조선 천주교회 창설’중에서) 
   천주학을 신앙으로 받아들인 이벽은 이를 더욱 세상에 알리기 위해 친우들과 천주교를 토론하였고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을 때 듣고 본대로 수표교 인근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이벽, 권일신, 정약용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한국 천주교회 공동체가 탄생됩니다.

   이렇게 한국 천주교는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되었고 1836년 프랑스 선교사들이 입국할 때까지 두 분의 중국 사제가 잠시 활동했을 뿐, 박해 중에도 불구하고 평신도들의 열성적인 활동으로 가꾸고 지켜온 빛나는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상으로 볼 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맹렬한 활동을 한 여회장 강완숙 골롬바, 선교사를 모시고자 죽음을 무릅쓰고 오천 리 북경 길을 아홉 차례나 왕래한 정하상 바오로, 16세에 장원급제하여 임금과 뭇 사람들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지만 하느님을 알고부터 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쓰레기처럼 버린 황사영 알렉산데르 등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참으로 위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주교 신자들이 되면서 그들은 복음을 실천하기 위하여 세상의 제도나 가치를 뛰어넘는 것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았습니다.

   <달레 교회사>에 황일광이라는 백정 출신의 천민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가 처음 신자들의 모임에 나갔을 때 당대의 석학인 양반들이 자신의 소매를 끌며 어서 올라오라고 환영하였습니다. 천민은 감히 양반의 대들보 위에 오를 수 없는 시대였기에 황일광은 너무나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의 평신도들은 신분이 어떻든 서로 형제라고 불렀습니다. 그 후 그는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였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천주님을 믿으면 죽어서 천당에 간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내게는 천당이 두 개 있습니다. 지금 여기가 천국이고 죽어서 갈 곳도 천국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평신도들은 교회 창립 때부터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고 하느님을 위해서라면 목숨 내놓는 것은 물론 세상의 모든 제도와 문화를 뛰어 넘어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 신앙의 선조들입니다.

   그러나 우리 시대의 평신도들은 어떻습니까? ‘평신도’라는 말 못지않게 ‘병신도’라는 비아냥거리는 말이 통용될 정도로 천주교회에 있어서 평신도들의 영향이 예전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축소되어 있음을 종종 실감합니다. 아마도 성직자 중심의 교회를 꼬집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라는 세 계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1코린12,12-13)
   천주교회는 이렇게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성령 안에서 일치된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세 신분은 계급의 높고 낮음으로 자리매김된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고유 특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성직자는 말씀의 선포와 성무 집행을 통해 신앙의 뿌리를 내리며 신앙인들을 성장시키고 하느님과 신자 사이에 다리가 되어 줍니다. 또 수도자는 청빈과 정결, 순명의 서원을 통해 세상적 가치들을 뛰어넘어 하느님 안에 사는 삶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평신도는 성직자, 수도자와는 달리 세상 안에서 가정과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 세상 한복판에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남긴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은 평신도의 직무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평신도는 본래 현세적 일에 봉사하며, 하느님의 뜻대로 관리함으로써 천국을 찾도록 불린 것이다. 그들은 세속에 살고 있다. 세속의 온갖 직무와 일, 가정과 사회의 일상 생활 조건들로써 그들의 존재 자체가 짜여진 것처럼 그 속에 살고 있다. 그 속에서 그들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의 정신으로 스스로의 임무를 수행하며, 마치 누룩과도 같이 내부로부터 세계 성화에 이바지하는 것이며, 특히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빛나는 실생활의 증거로써, 이웃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것이다.”(교회헌장 31항)
   교회헌장이 말하고 있는바와 같이 평신도들의 특성은 세상 한복판에 사는 것입니다. 자칫 성직자나 수도자처럼 그들을 따라 살고 신앙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떠나는 삶이 아니라 세상에 살면서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변화시켜 세상의 소금과 빛(마태5,13이하)의 역할을 하는 것이 평신도들의 삶입니다.
   평신도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시장에서, 거리에서 활동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불리운 것입니다. 이것이 평신도들이 받은 고유한 소명입니다. 세상의 한복판, 세속화의 흐름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려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힘을 얻어야 합니다. 예수님 중심의 신앙이 자리 잡지 못하면 자칫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보다 세상에 휩쓸려 속화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늘 깨어 있으라고 예수님께서 누누이 가르치신 것입니다.
   지금도 곳곳에서 신자들의 복음적인 삶이 이어지고 있기에 비신자들에게 앞으로 신앙을 갖게 된다면 어느 종교를 믿겠느냐는 질문에 ‘천주교’라는 답이 월등히 많습니다. 비신자들에게 있어서 천주교는 어지러운 세상의 희망이고 그 어느 종교보다도 깨끗하며 함께 하고 싶은 종교로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이러한 결과는 보이는 곳과 안 보이는 곳에서 열심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신자들에 기인한 것입니다.

   평신도들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은 몸담고 있는 가정과 직장, 그리고 세상 한복판입니다. 오늘 평신도 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고유한 특징인 세상의 복음화에 앞장 서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의 삶이 비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알리는 표징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