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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0주일 2006년 10월 29일 마르 10, 46-52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예리고에서 소경 한 사람을 눈뜨게 하신 이야기입니다. 복음서들이 기적 이야기들을 하는 것은 우리도 기적을 찾아 나서라는 뜻이 아닙니다. 초기 교회 신앙인들이 기적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 안에 놀라운 은혜로움을 체험하였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 체험을 회상하여 기적 이야기들 안에 담았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이 소경 한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를 하면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분이며, 신앙인들은 그분의 뒤를 따라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 지를 말합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우리가 존경하던 분이 세상을 떠나면, 우리는 그분들이 살아 계실 때 하신 말씀과 일을 회상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기억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그분들이 남긴 말씀과 하신 일에 감사하기도 하고, 우리도 그분들의 정신을 이어서 살아야겠다고 마음다짐을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회상하는 것은 부모나 선생님에 대한 것보다 훨씬 더 강도 높은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겪은 제자들은 그분이 살아 계실 때 하신 말씀과 행위들이 하느님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고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이 하신 실천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하느님의 일이 그들 안에도 살아있게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복음에는 초기 신앙인들이 하느님에 대해 믿던 바와 그들의 실천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바르티메오라는 눈먼 걸인은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칩니다. 유대인들에게 ‘다윗의 자손’이라는 말은 메시아, 곧 구원자를 뜻합니다. 그들은 다윗의 자손에게서 메시아가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초기 신앙인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불렀습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는 말은 초기 신앙인들이 바치던 기도입니다. 루가복음서에는 “바리사이와 세리가 성전에서 기도한”(18,9-14) 이야기가 있습니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이 사용하신 비유입니다. 바리사이는 기도에서 자기가 지키고 바친 일들을 나열하였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빌었습니다. 세리의 기도가 참되다는 결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며 빌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만 잘 지키면 하느님과의 문제는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 있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자비가 자기 안에 흘러들도록 기도합니다. 오늘 복음은 말합니다. ‘많은 이가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모르고, 자비를 비는 그리스도인들을 꾸짖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느님의 자비를 큰 소리로 외친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비를 청하는 소경에게 말씀하십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 너의 간청이 간절하기에 고쳐 준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구하였다.’는 말은 예수님이 자주 사용하신 표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하느님이 자비롭고, 고치고 용서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제물을 잘 바쳐서 하느님으로부터 혜택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신앙인은 자비롭고, 고치고, 용서하시는 하느님이 자기 안에 일하시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일하시면, 우리도 그분의 은혜로우심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장애가 생겼을 때, 그것을 치워주는 하느님을 기대합니다. 운동 경기에서 이기게 해 주고, 수험생을 입학시켜 주는 하느님을 기대합니다. 돌을 빵으로 바꾸어주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는 초능력을 주는 하느님을 기대합니다. 인간이면 당연히 겪어야 하는 한계를 넘어서게 해주는 하느님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내세에서 만나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줄 하느님을 기대합니다. 결국 인간의 아쉬움을 달래 주고 미래를 위한 불안을 해소해 주는 하느님입니다. 인간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발생하는 종교적 언어들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신앙은 하느님께 빌어서 우리의 염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살아계셔서 그분의 일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느님은 현세에도 함께 계시고 내세에도 함께 계십니다.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자기 한 사람만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하느님으로 열린 넓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소경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하느님이 함께 계셔서 열리는 넓은 세상을 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실천에서 하느님이 하시는 일을 알아듣고 그 일을 실천하여 하느님으로 열리는 넓은 세상에서 살겠다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입니다. 오늘 복음이 이야기하는 예리고의 소경은 예수님에게 자비를 간청하였더니 시력을 회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고 그 자비의 눈으로 보고 행동하는 사람이 그리스도 신앙인이라는 말입니다. 자비의 눈으로 주변을 보고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오늘의 소경은 사람들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큰 소리로 자비를 외쳤습니다. 우리에게도 제지하는 목소리는 많이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혹은 우리 밖에서 들립니다. “자비는 소용없다.” “그런 사람에게는 따끔한 변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자비를 실천하면 손해만 본다.” 우리 안에서도 밖에서도 들리는 자비를 제지하는 소리들입니다. 신앙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믿는 데에 있습니다. 그 자비가 우리 안에 흘러들어서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을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든 이에게 또 언제나 자비로울 수 없습니다. 자비의 지평은 우리가 사는 지평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에 살아서 움직이면, 우리에게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지평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비는 우리에게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의 주인공 소경과 같이 많은 저항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불러야 합니다. 그 자비를 부르고 외치면서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다. ◆ |
연중 30주일 2006년 10월 29일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서공석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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