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있는 눈”

2006. 10. 28. 오전 11:4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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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는 눈”

예전에 파리에서 선교 집회가 열렸다. 그때 초라한 옷차림의 시각장애인 한 명이 헌금 바구니에 27프랑을 넣었다. 헌금을 거두기 위해 바구니를 돌리던 헌금위원은 초라한 시각장애인이 많은 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고 “어떻게 그토록 많은 돈을 헌금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때 그는 말했다. “언젠가 저는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1년 동안 등잔에 불을 밝히려면 기름 값이 얼마쯤 드는가 하고. 그는 내게 1년 동안 등잔의 기름 값으로 거의 27프랑이 들어간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형제님이 보시다시피 나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기름 값이 필요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등불을 밝히기에 필요한 기름 값을 푼푼이 모아, 육신의 어둠보다 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는 영혼의 시각장애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주는데 사용하려고 모아둔 돈입니다.”  
그 시각장애인은 육체적인 눈이 보이지 않아 장애인의 삶을 살지만, 그의 마음과 영혼은 더는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육체적인 장애의 삶을 승화시켜 그리스도의 밝은 빛을 볼 수 있는 영혼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시인이 “인간이란 눈을 뜨면 세상을 보지만 눈을 감으면 하늘을 볼 줄 알아야 된다.” 고 했다. 바로 육체적인 눈과 영혼의 눈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영혼의 눈은 하느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눈을 떠도, 눈을 감아도 세상 것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돈을 벌기 위해 부릅뜬 눈, 용서하지 못해 증오와 불만이 가득한 눈, 나누지 못하고 자신만 아는 탐욕스러운 눈, 감사함을 알지 못하고 불평불만만이 가득한 눈, 그밖에 교만, 분노와 원망, 그리고 절망과 좌절로 가득한 눈! ‘눈은 마음의 등불’이라고 했다.
내 마음이 돈을 원한다면 돈만을 바라볼 것이고, 내가 사랑을 원하지 않는다면 미운 사람만 보이며, 또 사람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스럽게 보이는 것이 바로 나의 눈이다. 만일 내가 이러한 눈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먼 바르티매오처럼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마르코 10장 51절) 라고 소리 높여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눈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사랑의 눈으로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코 10장 47절)

서호본당 주임 | 한기석(마카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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