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이 원하는 때에, 하느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 정창주

2006. 10. 28. 오전 11:3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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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제29주간목요일 2006/10/26  

 

많은 사람들에게 왜 신앙을 가지려 하느냐고 물으면 ‘마음의 평화’ 때문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미 신앙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성당에 다닌다는 대답이 가장 높은 숫자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엄청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 선포에 많은 이들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저희는 평화롭기를 원하는데,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다니요, 주님?”

  ‘불을 지르다.’ ‘분열을 일으키다.’는 말씀은 평화를 깨뜨리는 상징이 아니라 분리의 상징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 말씀을 듣는 우리를 양분시키고 우리 안의 생각을 분별합니다. 
하느님 말씀은 우리의 어떤 생각이 파멸의 생각이고, 어떤 생각이 구원의 생각인지 밝혀 줍니다. 
그 말씀은 결정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단지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듣고 즐길 수 있는 그저 좋은 말, 
아무런 구속력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은 인간의 가슴에 스며들어, 
그곳에서 생명을 주는 생각과 인간을 해치는 생각을 분별하고자 합니다. 
즉 그 말씀을 듣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을 선택하고 
하느님께 반하는 모든 것에서 멀어질 것을 강력하게 요청하는 것입니다.

  세계 어느 종교에서도 그리스도교처럼 십자가를 따르는 추종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목숨을 바치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음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도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당신을 향해 모든 삶의 몰두와 투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적당히 타협하여 현세의 복을 누리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그런 무사안일의 신앙에 대해 정면으로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말합니다. “하느님 아닌 다른 모든 것을 버려라.”
우리에게 평화란 십자가의 수고로움에서, 
그 치열한 사랑의 열정에서 한 발 물러서서 느끼는 적당한 안도의 한 숨이 아니라, 
십자가를 짊어지고, 하느님 아닌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킴으로써 
주어지는 평화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본성이 찾는 평화’와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이렇듯 서로 다른 길에 있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특별히 10월 묵주기도 성월에 묵주기도를 드리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께서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계시다.’ 
성모님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겼던 의탁의 여인입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자녀인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고, 무엇인가를 청할 때도 이렇게 합니다.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소서.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분통을 터뜨립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평화”를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달랐습니다. 어머니는 “하느님 당신이 원하시는 때에, 
당신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루어 주소서 하고 살아가셨습니다. 
성모님이 찾으신 것은 “하느님이 원하시는 평화”였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가 지닌 신앙의 자기중심주의에 대해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고자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방법으로” 이루어 달라는 신앙에서 
“하느님이 원하는 때에, 하느님이 원하는 방법으로” 
이루실 수 있도록 맡겨드리는 신앙으로 거듭 나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불로 타올라 하느님의 평화의 사도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복자 성당 정창주(프란치스코) 보좌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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