돛대에 나를 묶고서

2006. 10. 26. 오전 11:24:31

글자
돛대에 나를 묶고서

최영균 신부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오랜 방랑 끝에 가정과 왕국을 되찾습니다. 전쟁과 신들의 재앙과 여러 가지 험난한 여정을 지치지 않고 지략과 용기로 정면 대결합니다. 특히 오디세우스는 마녀 키르케의 조언에 따라 선원들의 귓구멍을 밀랍으로 막아 세이렌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게 함으로써 위험을 벗어났으나, 그 자신이 혹시나 유혹에 빠져 배를 엉뚱하게 몰지 못하도록 자기의 몸을 돛대에 묶게 하고서 노랫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영원한 구원과 평화를 상징하는 고향으로의 귀환을 위해서 그는 스스로 수인(囚人)의 처지가 된 것입니다. 무질서와 어둠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 예수님이 오신 이유는 바로 질서와 평화를 주기 위해서라고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 이유가 바로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기 위해서 온 것이라니 정말 당혹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금 얻고자 하는 것은 구원과 행복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가 추구하는 것뿐입니다. 오히려 삶의 온갖 유혹과 위험스러운 역경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는 결기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그리스 문학작품에 나오는 오디세우스처럼, 평화가 아닌 죄와 불의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어떻게 평화롭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주지 않고, 이 어둔 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우리에게 북돋아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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