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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비를?
누군가 우리에게 자비를 청할 때, 우리가 받은 자비를 생각하며,
주님께 더 힘차게 매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 아닐까요?
얼마 전, 식당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주문을 하고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반대편 식탁에서부터 무엇인가를 팔기 위해 사람들에게 매달리는 한 남자 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사람들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저마다 손을 내저였고, 기운이 빠진 남자 분은 마지막 테이블까지 힘없이 걸어왔습니다.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조차 없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우물거리며 말하던 남자 분이 손에 들고 있는 과자 상자를 들어 보였을 때에서야 그것이 팔아달라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함께 있던 청년들이 됐다면 돌려보낼 찰나에, 저와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다 빠져나갔습니다.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다 '우리가 안 도와주면 누가 도와 주냐?'며 선뜻 도와주시던 제가 좋아하는 신부님 생각이 떠올라 용기 내어 "주세요."하고 얘기 했습니다. 그랬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께 있던 이들의 눈이 제게 모아졌습니다. 저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이르렀을 때 만났던 한 눈먼 이에 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는 길가에 힘없이 앉아 있다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다위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고 외쳤습니다. 사실 그는 그렇게 외치기 전, 아주 잠시였지만 그분께 도와달라고 청할까 말까를 놓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괜히 소리 질렀다가 무시만 당하고 오리혀 사람들의 눈에서 벗어나 얻어먹는 생활조차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겠지요.
그래서 평소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던 방식대로 예수님께도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용기내어 외쳤습니다. 소리를 외치자마자 예상대로 사람들의 무시와 꾸짖음이 그를 더 작게 만들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를 더욱 주님께 매달리도록 만들어, 더 큰소리로 주님을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의 용기와 믿음을 보시고 그를 고쳐 주셨던 것입니다.
처음 그가 예수님을 불렀을 때, 사람들은 그의 용기와 믿음을 무시했습니다. 자신들이 이미 주님께 많은 자비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보다 더 큰 믿음으로 다가오는 이에게 그런 기회는 주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모습을 보며, 자신들이 입은 자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들은 눈먼 이를 격려하였습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자비를 청할 때, 우리 마음 안에서 갈등이 분명 일 것입니다. 하비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실 때, '도와줄까, 말까' 고민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이미 우리가 받은 자비를 생각하며, 주님께 더 힘차게 매달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 아닐까요?
- 김용주 비오 신부 │ 교동 성당 보좌 - |
우리가 자비를?
2006. 10. 28. 오전 11: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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