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은

2006. 10. 28. 오전 11:4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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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깨닫는다는 것은

 

낙엽이 우수수 떨어질 때,
겨울의 기나긴 밤,
어머님하고 둘이 앉아
옛 이야기 들어라.
나는 어쩌면 생겨나와
이 이야기 듣는가?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 되어서 알아보랴?

 

김소월 시인의 시 ‘부모’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부모님에 관한 시 중에 가장 마음에 와 닿는 시입니다. 이 시는 짧습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부모님의 사랑을 부분적인 기억과 각종 미사여구로 버무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시인은 그저 각자의 기억을 스스로 추억하도록 초대하고 부모님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부모가 되어도 제대로 깨달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크고 깊은 사랑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자녀를 부모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부모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을 닮았습니다. 시인이 얘기한 것처럼 부모의 사랑도 형언하기 어렵고 다 깨달을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은데 그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의 사랑은 어떠하겠습니까?

성경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거대한 시입니다. 오늘 미사의 성경도 그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인간을 참 행복으로 이끌고자 애쓰시고 급기야 외아들을 인간 구원을 위해 대사제인 동시에 제물로 보내셨습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눈먼 티메오의 아들을 볼 수 있게 하신 치유의 기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른 기적사화와 달리 이 기적은 수난과 부활에 대한 마지막 예고 직후, 마지막 예루살렘 입성 직전에 위치해 있습니다. 주님께서 수난에 대한 예고를 하신 다음이라 제자들은 혼란스럽고 답답한 마음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치유를 청하는 눈먼 바르티메오에게 시끄럽다고 윽박지른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심난하던 상황에서 기꺼이 눈먼 거지의 요청을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고 그 사랑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결정적으로 십자가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깨달을 때 진정으로 부모에게 감사와 존경을 드릴 수 있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인간은 하느님의 착한 자녀로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것이며 사랑 자체이신 그분은 우리 자신을 위해 우리에게 그것만을 바라십니다. 위령성월을 앞두고 하느님과 이 세상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참된 사랑을 묵상하는 은총의 시간을 가져 봅시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시편 8,5)

 

-최석진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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