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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지나시는 예수님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오늘은 오래된 아프리카 우화 하나를 먼저 들려 드리겠습니다. 이 우화는 오리가 어떻게 수영을 처음으로 배우게 됐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리와 닭이 바닷가의 어느 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먹이는 어부가 버리는 썩은 물고기였습니다. 썩은 물고기만 먹는 그들과는 달리 바다를 들락거리며 수영을 하면서 신선한 물고기를 잡아먹는 바다 왜가리를 매일 보며 오리도 신선한 물고기가 먹고 싶었습니다. 그러자 닭이 오리에게 말했습니다. “넌 할 수도 없는 걸 바라냐? 왜가리는 바다새야 그리고 몸이 아주 가볍단 말이야. 우리는 땅에 사는 새고 수영을 할 수가 없어. 그 무거운 몸으로 네가 바다에 들어가면 너는 돌덩이처럼 바다에 가라앉을 거야. 그러면 넌 끝장이야.” 오리는 닭의 말을 믿었고 계속 썩은 물고기만을 먹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인지 신선한 물고기에 대한 오리의 마음은 없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어느 덥고 습한 날이었습니다. 오리는 더 이상 썩은 물고기를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고기의 냄새가 너무나 지독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오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슬프게 앉아있었습니다. 잠시 후, 헤엄을 치던 왜가리가 오리의 불쌍한 모습을 보고 가까이 와서 묻자 오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오리는 자기도 헤엄을 치며 신선한 물고기를 얼마나 먹고 싶은지, 그렇지만 창조주가 자기를 무거운 육지 새로 만든 것이 슬프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왜가리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왜가리도 처음에는 헤엄을 칠 줄 몰랐지만 배고픔에 용기를 내어 물에 뛰어들었고 자신이 수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리에게도 물에 뛰어 들어보라고 말했습니다. 두려웠지만 용기를 주는 바다 왜가리의 말에 바다에 뛰어든 오리는 자신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자신이 물에 가라앉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리는 헤엄을 잘 치게 되었고 자신이 원하는 만큼의 신선한 물고기를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듯이 오리는 그저 땅에서만 사는 새가 아니라 물에서도 잘 살 수 있는 새입니다. 그렇지만 오리가 자기는 육지에서만 살 수 있는 새라고 믿는 한 오리는 육지에 남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아프리카 우화는 오리가 참으로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주신 자신 안의 능력과 자신이 누구인지를 찾아가는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나오는 바르티매오의 이야기도 이와 비슷합니다. 길가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바르티매오가 어떻게 하느님께서 주신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하느님의 자녀인 자신을 찾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장님인 바르티매오를 고쳐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하는 마르코 복음 사가의 이야기는 많은 성서학자들을 매료시킵니다. 왜냐하면 공관복음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병자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두 번씩이나 이름을 언급합니다. “티매오의 아들(그리스 언어) 바르티매오(아라마익 언어)”라고 두 번씩이나 말함으로써 마르코 복음 사가는 성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그 이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예로부터 성서시대 사람들에게 이름은 단순히 한 사람을 명칭 하는 것을 넘어 그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와 운명까지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바르티매오라는 이름은 ‘신성모독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따라서 바르티매오는 그 거지의 별명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거지 장님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히브리 사람들은 장님이 된 것은 하느님께 죄를 지었거나 하느님을 모독한 죄의 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와는 반대로 그리스말의 바르티매오란 이름 속엔 “영예로운 사람”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두 가지의 상반된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마르코 복음 사가는 우리에게 거지 장님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 아니라 영예로움과 존엄성을 지닌 사람임을 알려주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거지 장님의 신체적 질병만을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주신 인간 고유의 존엄성과 영예로움을 되찾아 주신 것입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또 아프리카 우화의 바다 왜가리가 오리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우리도 주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하느님께서 주신 고유한 존엄성과 가능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닷가의 오리나 혹은 길가의 바르티매오처럼 지친 영혼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우리 자신이 육체적 질병이나 매일 계속되는 어려운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에겐 늘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 오늘도 우리 곁을 지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곁을 지나시는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약점과 부족함을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우화의 닭처럼 우리의 희망을 무산시키는 주위의 사람들의 말에 자신의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바르티매오는 자신을 제지하는 주위 사람들의 말에도 풀이 꺾이지 않고 예수님만 찾아 그분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을 받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영광의 길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바르티매오가 느꼈던 기쁨과 영광을 체험할 수 있도록 주님만 바라보며 그분의 이름을 불러봅시다.
-농은수련원 임준기 다미아노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