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 - 조성호 신부님

2006. 10. 29. 오후 3:16:44

글자

나해 연중 제 29 주간 금요일.
2006. 10. 27.
중계본동.

 

에페 4, 1-6.
루카 12, 54-59.

 

   팔레스티나 지방에서는 비구름은 지중해로부터 가져온 습기를 머금은 채 서쪽으로부터 오고, 비가 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부터는 사막의 열기를 안고 있는 바람이 불어오고 그러면 더워집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경험상 구름이 서쪽으로부터 오면 비가 오겠다고 예측을 하고, 실제로 비가 옵니다. 그리고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고 예측을 하고, 실제로 더워집니다. 이것으로 날씨 변화를 예측하는데, 예수께서는 실제 삶에서의 예를 드시면서 '그렇게 잘 예측하고 잘 아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때는 왜 모르느냐'고 묻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을 바라보며 예측을 하듯이 이 시대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더 예민하게 가지며, 내 삶 속에서 주님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면서 예수께서는 군중들을 바라보시며, 지금의 시간을 심판을 향해가는 시간으로 여기라고 하십니다. 지금의 삶이 재판정에 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죠. 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지금 나는 합의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아직 재판정으로 가는 도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합의를 끌어내거나 화해하지 못했다면, 결국 재판정에 가면 내 삶은 판가름을 받게 되고 그때에는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긴박함을 말해주기 위해 예수께서는 단어를 명확하게 선택하십니다. 우리 번역에서는 58절에서 세 번 다 재판관으로 번역을 해두었지만, 실상은 다른 단어가 쓰여져 있습니다.(그렇다고 해도 그 뜻은 재판관으로 번역할 수 있다)처음에 쓰여진 단어는 '법관'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쓰여진 것은 재판관이죠. 처음 법관에게 갈 때는 함께 갑니다. 별로 위압적이지 않은 상태이고, 법관도 역시 일반적인 법관입니다. 이때가 바로 내가 화해할 수 있는 때이고, 충분히 나에게 그럴 시간이 주어진 때입니다. 그러나 내가 만약 화해하지 않았다면, 합의를 끌어내지 않았다면, 재판정에 끌고 가게 되고 결국 그 법관은 나를 재판하는 이가 되며 잘못한 내 삶은 사법적인 절차에 의해 감옥에 가게 되죠. 그때에는 내 힘으로 나올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예수께서는 이 예를 드시면서 지금이 바로 주님의 심판을 향해 가는 때이니 할 수 있을 때 화해하며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 삶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지금 혹시 내가 화해를 청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도 껄끄러운 상대가 있습니까? 그를 용서하지 못해서 내가 지고가야 할 숙제도 있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지 못한 상대가 있다면, 용서하지 못한 상대가 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을 때 행해야 합니다. 내가 그것을 가슴에 담아두고서는 주님 앞에 나설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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