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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2주간 화요일 2007.6.26.(창세 13,2.5-18/ 마태 7,6.12-14)
얼마 전 성주군에서 저의 명의로 되어있는 토지에 대한 공시지가표가 배달되어 왔습니다. 작년에 비해 조금씩 올랐기에 “세금 더 많이 나오겠네!” 하는 생각을 잠시 한 적이 있습니다. 유학을 다녀오니까 집안에서 종중산(宗中山)을 저의 명의로 바꾸어놓아 저에게 세금고지서가 날아옵니다. 신부가 설마 종중산 팔아먹겠나 싶어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하기야 자식들이 상속으로 남겨진 땅 때문에 얼마나 싸움을 많이들 합니까? 더 비싼 땅 차지하려하고 더 많이 차지하려고 형제지간의 의(義)를 끊기고 합니다.
그렇게 보면 아브라함은 참 바보 등신인가 봅니다. 롯과 땅을 가르는데 자기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롯에게 선택권을 온전히 내어줍니다. 그래서 롯은 물이 넉넉한 요르단 유역을 차지합니다. 그 땅이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주님의 동산과 같다.” 라고 표현했겠습니까? 사막을 헤매는 유목민에게 있어서 물이 넉넉한 지역은 그야말로 주님의 동산과 같은 낙원이었을 것입니다.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가축이 마실 물이 넉넉하니 가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같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좋은 땅은 고스란히 롯에게 내어주고 자기는 척박한 가나안 땅에 살게 되었습니다. 정말 바보 등신입니다.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교납금이 걱정이 되어 돈 이야기 하면 즉시 “신부님은 돈 이야기 하지마세요. 신자들이 안 좋아합니다.” “신부님이 돈 이야기 하면 신부님 이미지가 나빠집니다.” 이런저런 말로 충고를 합니다. 충고는 감사하지만 그 소리를 듣는 신부는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 이야기는 돈 이야기가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정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의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자신이 주도권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롯에게 선택권을 거리낌 없이 내어주는 것은 자신은 하느님을 확고하게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도무지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그저 떠나라는 막막한 하느님의 명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맡긴 아브라함인데 무엇이 부족하였겠습니까? 땅을 믿은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만 믿을 뿐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은 땅을 믿은 롯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내렸습니다. 믿음 속에 하느님께 의탁하는 아브라함은 이렇게 축복을 받고, 많은 민족을 약속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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