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북한에서도 영어를 배운다고 합니다.
"I am a boy"를 번역하면 "나는 소년입니다"가 되지요. 그런데 북한말로는 어떻게 번역될까요? "내래 간나새끼야요!"가 정답이라나요?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 역사에 길이 남을 영웅이 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남북의 통일을 이룰 대통령이 역사에 길이 기록될 인물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지요. 그러나 통일의 길은 결코 쉽지가 않기에 난세를 극복할 줄 아는 지도력을 가진 자만이 영예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남북통일이라는 과업은 많은 지도자들을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북한 주장에 호의적이면 좌경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남한의 주장에 중심을 두면 보수 인사로 거론되어 대화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쉽지 않을 민족 번영의 길인 통일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요?
바로 오늘 독서와 복음이 하나의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마태 18,19).
간절히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또 베드로가 예수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마태 18,21)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2).
바오로 사도 역시 제2독서에서 말씀하고 계시지요.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 4,29.32).
이것이 바로 통일의 방법입니다.
"아이고, 신부님. 그렇게 해서 언제 되겠습니까? 그냥 힘으로 단번에 밀어부치는 것이 속 시원하고 성과 또한 크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남북한 70여 년 역사는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생생히 보여주었습니다. 힘으로 통일을 이뤄보겠다고 남과 북이 오랜 시간 대치했지만 결과는 원수 맺음과 이산의 고통, 그리고 극빈국으로의 전락밖에 없었습니다. 아물기 어려울 것 같은 이 큰 아픔은 우리에게 교훈을 남겨 주었습니다. 이래서는 우리 모두의 미래가 어두울 뿐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될 것 같지 않지만 기도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양치기가 있었는데 가끔 그의 목장 안에서 사고가 발생하곤 했습니다. 옆집 개가 울타리를 넘어 들어와서 양들을 물어 죽이곤 했던 것입니다. 물어 죽여도 개들은 하필 양치기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탐스럽고 튼튼한 양만을 골라 죽였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화가 솟구쳐 이웃집으로 달려가 큰소리로 항의를 하고 분풀이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울타리를 쳐야할까요? 아니면 개 주인한테 보상을 요구해야 할까요? 이 방법들은 서로가 원수처럼 지내야 하는 막판으로 가는 방법이지요. 양치기는 깊이 생각한 끝에 이웃집 아이들에게 새끼 양을 몇 마리 선물했습니다. 아이들은 금방 새끼 양을 사랑하게 되었지요. 애지중지 양을 돌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키우던 개를 묶어놓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감정이 격화되는 상황일수록 지혜가 필요하지요. 감정에 감정으로, 싸움에 싸움으로 대해서는 결코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는 처지로 자신과 상대를 몰아가고, 결국에는 둘 다 죽고 마는 가장 어리석은 방법입니다.
기도와 용서와 사랑은 총과 대포와 핵무기보다도 더 위대합니다. 총과 대포가 원수 맺음과 이산의 아픔을 가져왔다면, 기도와 용서와 사랑은 화해와 기쁨과 통일의 열매를 반드시 가져올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19.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