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마태오 6장 7-15절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허깨비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김해자 시인의 ‘뜸을 뜨며’란 시(詩) 가운데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뜸을 뜨면서 깨닫는다.
우린 너무 많은 말을 했다는 걸...
돌아보니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말로만 살아왔습니다. 입으로만 살아왔습니다. 생각으로만 살아왔습니다. 핵심도 없이 살아왔습니다. 알맹이가 다 빠져나간 허깨비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발로 한번 살아봐야겠습니다. 몸으로 살아봐야겠습니다. 진정으로 한번 살아봐야겠습니다.
마음으로 살기 시작할 때, 말로만 살 때에는 전혀 체험하지 못한 은총도 접할 수 있겠지요. 마음으로 살 때 한 송이 꽃을 통해서도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섬세한 손길을 느낄 수 있겠지요. 광대무변한 온 우주를 접할 수 있겠지요.
마음으로 살 때, 우리 자신의 내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우리 내면 안에 하나의 정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매일 들어가 그 정원을 아름답게 가꿀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음으로 살 때, 매 순간이 기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꼭 자세를 잡아야, 반드시 어떤 장소에 가야만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 모든 곳이 다 기도소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우리 기도를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살 때 청청한 대나무, 갈대숲을 서걱거리며 지나가는 바람, 찬란한 노을, 작은 풀꽃 한 송이...그 모두가 한결 같은 침묵 속에 마음으로 하느님과 통교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억지로 하게 될 때, 의무적으로 할 때, 일종의 숙제나 일이 되고 맙니다. 기도는 점점 힘들어지고, 오래 가지 않아 기도를 중단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잘 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도에 맛을 들여야 되겠지요. 기도가 기뻐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행복해야 합니다.
많은 말이 동반되는 기도, 보고를 위한 기도, 의무감에 따른 기도, 많은 양의 기도보다는 짧더라도 마음이 담긴 기도, 절실함이 담긴 기도가 중요합니다. 결국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고, 하느님 안으로 들어가야 참기도가 시작될 것입니다.
마음으로 살 때, 기도하기 시작할 때, 그토록 어려웠던 과제인 용서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 없이 용서하기 힘들듯이 용서 없이 기도가 어렵습니다. 용서가 없다면 고통이, 분노가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우리 마음을 무겁게 짓누를뿐더러 모든 인간관계, 영적 생활, 사고방식, 건강 등 우리 모든 삶에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마음이 담긴 진실한 기도를 통해 용서의 길을 걷기 바랍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과거란 감옥에서 나와 이웃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탈출한다는 것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나와 이웃의 손에 미래란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쥐여 주는 일입니다. 용서한다는 것은 두려움을 떨치고 용감하게 일어선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큰 기적의 원동력인 용서는 결국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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