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11주간 수 마태오 6,1-6.16-18- 익명으로 해주세요. 신부님!!!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위선과 가식에 대한 경고를 하고 계십니다.
특히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 기도, 자선, 절제(단식)을 가지고 이를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의식해서, 다른 이들 앞에서 무언가를 했을 때 그 사람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 예전에 읽었던 어느 책에 쓰인 글이 생각납니다.
‘선한 행위를 한 것을 남에게 말하지 말라. 한번 말할 때마다 그 공덕이 절반씩 줄어들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공덕이 전부 사라지고 만다. 그 대신 당신 나쁘게 행한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라. 그것이 진정으로 참회하는 길이다.’ (「지구별 여행자」중에서)
이 글을 읽고 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뜨끔하였습니다. 얼마나 제 자신이 선한 행위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좋아했고, 나쁘게 행한 것에 대해서는 숨기고 싶어 하는지... 얼마나 제 자신이 이미 받을 상을 다 받고 살아버리는지...
과연 우리는 하느님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있는지.. 오늘 화답송은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행복하여라” 라고 말하는데, 과연 우리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하여.. 내 삶을 통하여 얼마나 하느님을 경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아주 조그마한 선행이나, 봉사를 크게 부풀리려는 우리들입니다.
그냥 조용히 지나갈 일도 크게 드러내려는 우리들입니다.
받는 이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선행, 봉사라는 미명하에 자신의 이름과 명예를 드러내려는 오늘날입니다.
분명, 이런 모습은 하느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행, 봉사를 통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찬양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숨은 일을 보시어 갚아주시는 하느님뿐만 아니라, 이를 바라보는 우리들에게도 아무런 감동을 주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선행이요, 봉사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모습도 많습니다.
곧,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도와주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 많이 계십니다.
이러한 분들은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도움을 받는 이들에게도 진정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지니게 하는 분들입니다.
얼마 전에 제주시내 본당에 미역을 팔러갔습니다.
정말 너무 고맙게도 많은 신자 분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사주셨습니다.
미역을 사줄 뿐만 아니라, 수고한다며 성전건립에 보태라고... 식사라도 하라며... 크고 작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교구 사제단 피정을 마치고 본당에 돌아오니, 성당 마당에 승용차 한 대가 서있었습니다.
누가 왔나 싶었지만, 비도오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그냥 사제관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한 5분쯤 지나자, 사제관으로 자매님 두 분이 찾아오셔서 ‘한 시간 넘게 신부님을 기다렸습니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몰라 뵈었지만, 전에 있었던 본당 신자 분들이셨습니다.
잠시 머뭇머뭇 거리더니, 조심스럽게 힌 봉투를 꺼내어 제게 건내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이거 얼마 되지 않지만, 성전건립에 보태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자매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라고 묻자, 자매님께서는 ‘아니, 이름을 내지 말고, 그냥 익명으로 해 주세요.’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도 저 혼자만이라도 이름을 알았으면 하니, 이름과 세례명을 알려주십시오.’ 라고 말씀 드린 후, 이름을 받아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자매님의 가정 형편이 아주 넉넉하냐? 그러지도 않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매님과 자매님의 가정에 대한 기억을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한 10년 전쯤에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지금도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그런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본당 건립에 보태라고 봉헌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익명으로 말입니다.
액수가 크기에... 남편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미사를 드려 달라고 청해도 될 것을 그러지 않은 그 마음이 더욱 고맙고 순수하게 느껴졌습니다.
왜, 익명으로 봉헌했는가? 여러 이유와 생각이 있겠지만, 분명한 이유는, 사람에게 칭찬을 듣지 않고, 하느님에게 칭찬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선행이 아니라, 숨을 일도 보시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마음이요, 행동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진정, 오늘 복음 말씀처럼 숨을 일도 보시는 하느님께서 자매님에게 큰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미사를 봉헌하며 자매님과 자매님의 가정을 생각하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저를 찾아온 자매님과 같은 선행을 하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 수없이 많습니다. 일일이 헤아려 이야기 하자면 그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때문에 이제는 남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 모습을 볼까 합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어떠한 마음으로 봉헌을 하고 있습니까?
남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이름과 명예를 높이기 위해서 봉헌을 합니까? 숨을 일도 보시는 하느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봉헌을 하고 계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