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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1주간 화요일2007.6.20.(2코린 8,1-9/ 마태 5,43-48)
낮에 본당신부에게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가 참 힘이 들 때가 많습니다. 10통의 전화가 걸려오면 8통은 도와달라는 전화입니다. 성당을 건립한다는 전화는 물론이고, 성당이 태풍으로 무너졌다는 전화. 여러 장애인 단체, 무의탁 양로원을 비롯해서 심지어 농수산물 판매에 이르기까지 도와달라는 전화를 하여 하소연합니다. 반복적으로 거절하는 것도 못할 일입니다.
제가 보좌신부 때의 일이었으니까 참 오래 전 일입니다. 당시 쉰 살이 넘은 어떤 자매님은 자신이 받는 봉급도 변변찮았는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신학생을 위해 매월 10만원을 익명으로 전해달라며 꼬박꼬박 보내주셨습니다. 당시 보좌신부가 한 달에 14만원 활동비 받을 때니까 그분이 도와주신 돈은 상당히 큰돈이었습니다. 그분의 후원을 받은 그 신학생은 신부가 되어 지금 훌륭하게 사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눔의 정신은 우리 그리스도교의 생명과 같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복음서에 나오는 많은 사랑의 실천 이야기는 나눔의 정신으로 구체화됩니다. 자기를 내어주고 자기가 가진 것을 내어놓는 나눔이 없이 사랑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힘을 나누고, 재물을 나누고, 학식을 나눌 수 있습니다. 나눔의 가치도 자기가 가장 아끼는 것을 나누는 것이 가장 클 것입니다. 물론 자기 생명을 나누는 것보다 더 큰 나눔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린 성체성사의 나눔을 가장 큰 나눔의 신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루카 22,19).
사람은 자신에게 있어 소중한 것일수록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가난하게 자란 사람은 돈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방학이 끝나면 부모님이 이집 저집 다니시며 빚을 내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고, 그 모습이 가슴에 사무칠 것입니다. 그래서 대게는 가난하게 자란 사람은 돈밖에 모른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돈을 모으려 합니다. 하지만 나눔의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 가난이 얼마나 무섭다는 것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자기 힘닿는 데까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려합니다.
오늘 독서를 묵상하면서 모든 것을 형제적 사랑으로 나누었던 초대 교회의 그 생동적인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면 좋겠다면 생각을 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극심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히려 구제활동에 참여하는 특전을 달라고 간곡히 청하고 있습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그것을 나눈다면 그 나눔은 더욱 값진 것이고, 그 나눔은 우리를 성체성사의 신비를 실천하는 또 다른 그리스도가 되게 할 것입니다. 오늘도 나누는 성체성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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