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연중 제 11 주간 화요일
복 음 : 마태 5, 43-48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오늘 '참된 행복의 선언'으로 시작한 마태오 복음 5장의 마지막 부분을 듣게 됩니다. 산상설교의 내용으로 꾸며진 5장의 말씀은 오늘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 교훈이 극도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복음말씀을 들으며 우리는 반문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 악인과 의롭지 못한 이들에게 해를 비추지 마시고, 비도 내리지 마셔야 공평한 것이 아닙니까? 그들은 이미 우리들을 이용해 덕 볼 것 다 본 사람들 아닙니까!' 이렇게 불평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더 힘든 말씀을 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라'고... 치밀어 오르는 울화와 분노로 내 마음조차 가누지 못하는데 그들을 사랑하라고 하시다니...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도 아니고, 내가 아는 사람만도 아니고,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처럼, 갇히지 않는, 막히지 않는 사랑을, 그러한 완전한 사랑을 나도 실천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우리 주변에서 참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성격이 고상하고 정직한 사람은 원수에게도 인간적인 이해심을 가지면서 부드럽게 관용을 베풀고 신사답게 불화를 씻을 줄도 아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람은 도량이 매우 큰 자로 나타납니다. 이렇게 되기도 실상 대단히 힘이 들텐데, 오늘의 복음말씀은 더욱 철저하고 무제한적인 마음의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상의 것, 즉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참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이 외의 것은 '이방인들도' 행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분이 요구하시는 사랑은 감상적인 감동 같은 사랑이 아니라 진지한 박애정신에서 비롯한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그 지극한 사랑을 먼저 자신의 지상 삶과 죽음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받는 극심한 반대를 받으셨고 갖은 수단과 온갖 잔인한 파괴 방법을 다 이용하는 적의와 증오에 찬 박해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원수들을 용서해 주시기 위한 기도를 하셨을 뿐 아니라 구원의 행위를 통해 원수들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악에서 선을 이끌어 내셨습니다. 악이 사랑에 의해 선으로 승화된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증오의 힘을 위대한 사랑의 힘으로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스승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청취자 여러분,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사랑은 자신의 '자아'를 능가하는 사랑입니다. 인간의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하느님 안에서 볼 때만 얻을 수 있는 바로 그 사랑입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옳고 그름이 일방적인 편견을 떠나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투쟁의 대상이 되던 중대한 사물들이 이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의 정신은 나 인간의 정신과는 격차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 하느님의 정신으로 나의 정신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정신 안에서 우리가 자라고, 옹색함을 벗어나 광활함으로 나아가며, 비루함에서 위대함으로, 이기심에서 사랑으로 나아갈 때, 바로 나의 원수를 내가 사랑하는 일이 가능한 현실로 실현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