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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백성사의 모범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지난 한 주간은 성체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매일의 미사 안에서 성체로 오시는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시면서 행복하게 잘 지내셨죠?
오늘도 여전히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면서 행복하게 지내실 수 있으시길 바랍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제1독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를 탐내서 취하고는 임신한 것을 알게 되자
우리야를 전장에서 불러들여 아내와 잠자리를 함께 하도록
여러 번 시도를 했지만 실패하자 결국 우리야를 전장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하여 그 죄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나탄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다.
다윗은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이었지만 겸손하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는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입게 됩니다.
만일 다윗이 다른 절대 권력자들처럼
“이 나라 모든 것이 내 것인데, 내가 여인 하나 취한 것이 무슨 잘못이오.”
라는 식으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다면
그는 하느님의 사랑을 잃어버렸을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하느님 자리에 두려는 절대 권력자들의 오만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을 경외함으로써 겸손하게 하느님 앞에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 복음에서 전하는 얘기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리사이 중에서 시몬이라는 사람이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 가르침을 받아들였거나
적어도 관심을 가졌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초대해놓고서 초대한 손님에 대한 기본 예의인
발 씻을 물도 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좀 이상합니다.
바리사이들은 그런 외적인 형식을 아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을
자랑으로 삼는데 말입니다.
이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초대할 정도였으니까
예수님을 완전히 무시하기 위해서 그런 실례를 범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외적인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시는 예수님의 자유로움을
자기도 받아들일 정도로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법 잘 알아들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합니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고을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한 여인이
식사를 하고 계사는 예수님 뒤에 서서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닦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라드렸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시몬은 곧 자신의 기준으로 그 상황을 판단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간단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시몬도 금방 알아들을 정도로 쉬운 내용이었습니다.
‘많이 용서 받은 사람이 많이 사랑한다.’
이 가르침은 우선 시몬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시몬은 바리사이였기에 누구보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는 죄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할 수 없는 것이죠.
예수님은 당신이 시몬 집에 도착했을 때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랑의 행동이 없었음을 지적하십니다.
그런 시몬에 비해서
그 여인은 큰 사랑을 보였기 때문에 이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미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그런 큰 사랑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그 여인이 어떻게 해서 죄를 용서받았는지 설명은 없습니다.
짐작컨대 그 여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었고 그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면서
자신이 큰 죄인인데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해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
그 자리에 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 한번 하느님의 사랑을 확인해주십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분명히 알아들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라고 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다
예수님이 죄를 용서해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다시 일침을 가하십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유다인들은 특히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켜서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을 받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가치관에 따르면 그 여인은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형제 자매님,
오늘의 전례 말씀들은
우리가 어떤 자세로 고백성사에 임하는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고백성사를 볼 필요가 있나?’
‘이 정도는 고백내용에서 빼도 되겠지?’
‘왜 내 죄를 사제에게 다 말해야 되나?’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고백성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가 없다고 예수님 앞에서 뻔뻔하게 대했던 시몬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기에
그 사랑에 올바로 응답해드리지 못했음을 뉘우치는
복음의 여인처럼 고백성사에 임해야 합니다.
고백성사에서 사제가 죄를 용서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백 사제는 하느님의 용서를 확인해주고 전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해성사라고 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는 길은 내가 그분의 사랑을 잘 받아들이고
내가 그 사랑에 응답해서 하느님을 잘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잘 사랑하기 위해서
그분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선물인 형제들을 잘 사랑하는 것입니다.
형제 자매님,
이번 한 주간은 같이 생활하는 가족들 나아가서 이웃들을 잘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채워지길 기도드립니다.
대구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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