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해 연중 11주간 화 - 슬기야 정말 미안해! -- 이찬홍 신부님

2007. 6. 21. 오전 9:4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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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11주간 화 마태오 5, 43-48- 슬기야 정말 미안해!


아침에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상쾌한 마음으로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만났고, 기분 좋게 수업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분과는 달리, 한 학생에게 상처는 아니더라도, 어쩌면 지금까지의 관계를 단절케 하는 그런 섭섭한 마음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아이는 반장입니다.
반장이어서 그 어떤 아이들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대화했습니다.
한 학기가 다 되어가니, 적어도 3개월 이상을 만났기에 당연히 얼굴과 이름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관계입니다.
제가 아무리 머리가 나빠 기억력이 없다하더라도... 2초만 기억한다는 붕어가 아닌 이상, 모르는 것이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같은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제가 착각을 해서 반장을 몰라 봤습니다.
순간적으로 이름은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하더라도, 바로 옆에 앉아있는 반장을 몰라보고, 다른 학생에게 반장, 반장하고 불렀던 것입니다.
제 행동이 이상했는지 한 학생이 ‘신부님, 반장은 저 친구가 아니라, 슬기에요.’ 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아이는 ‘신부님, 너무 그래서 반장 섭섭하겠어요.’는 말이 제 귀에 크게 들렸습니다.

그 순간, 반장인 슬기의 얼굴이 크고 뚜렷하게 제 눈에 들어왔고, 섭섭해 하고 황당해 하는 모습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해야할까 고민하다가, 솔직히 이야기 했습니다.
‘난 참 바보다. 그렇게 자주 만난 슬기도 몰라보고... 슬기야 미안하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신부님이 착각을 했다. 저 친구가 3반 반장인 주희하고 너무 닮았다. 이미지와 체격, 얼굴... 너무 비슷해서, 저 친구가 반장인줄 알았다.’ 라며 사태를 수습했지만, 미안한 마음은... 저 자신이 바보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수업시간 내내, ‘이 바보 같은 놈아. 아무리 머리가 나쁘다 하더라도, 이런 실수를 하냐? 언제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냐... 언제면, 어리버리한 모습을 버릴 수 있냐?’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반장인 슬기가 수업을 마치고 나가면서 ‘신부님 괜찮아요.’ 라는 말을 해주었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제 마음은 ‘지금 내 모습이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상처와 아픔만 주는구나.. 이럴거면 다음 학기에는 수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생각이 하루 종일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복음에 예수님께서 형제들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며 ‘이렇게 자주 실수를 하고, 그 실수가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주는데, 언제면 주님처럼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주님처럼 완전한 사람은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언제면 어리버리한 모습이 없고 총명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어리버리하지 않고 총명해 버리면 더 이상 이찬홍 야고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우리가 완전하신 하느님을 닮을 수 있다면, 어떤 점을... 어떤 모습을 닮을 수 있을까요?
아무리 노력해도... 죽어다가 다시 살아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모습을 닮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은...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고, 돌보아 주는 하느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습니다.
솔직하고 순박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하고 바라보는 그 모습, 그 마음은 닮을 수 있고, 닮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았다고 할 때, 우리의 발가락과 하느님의 발가락이 닮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완전하심을 지닐 수 있다면,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모습, 권능을 지녔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사랑하는 마음을.. 남을 배려하고 이해하고, 용서하는 그 모습을 닮을 수 있고, 닮았다는 것입니다.
자주 실수하고, 남에게 상처를 준다 하더라도, 더 많이 살아하고, 더 많이 배려하고, 더 많이 용서하며 완전하신 하느님의 모습을 닮을 수 있도록 노력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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