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으로 - 김상조 신부님

2006. 12. 1. 오후 8:24:09

글자
연중 32주간 목요일

2006-11-16

 

보이는 것으로

예전엔,
신부 복장은 끌레셔츠에 수단이라 믿고,
수단을 입지 않는다면 끌레셔츠가 신부복장이라 생각하고 외출한 적이 많았다.
사실 본당에선 수단을 입고 다니면 되기 때문에 복장에 대해 크게 고민한 적이 없었다.
으레 외출 시엔 끌레샤스만 걸치면 신부복장이라 여기고 양복을 걸칠 생각을 해보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시설에 와서는 본당이 아니니 수단 입을 일이 별로 없었다.
여름이면 반팔 끌레셔츠,
겨울이면 끌레셔츠 위에 점퍼나 반코트 정도만 걸쳐도 예를 갖춘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여름이라 아무 생각없이 반팔 끌레셔츠만 걸치고 기관장모임이나 공식 행사장에 나가고 보니
뭔가 어색하고 예의가 아닌 듯했다.
그러고 보니 웬만한 직장인이라면 한 여름에도 넥타이에 양복정장을 걸치고 있으며,
높은 지위에 있는 분들일수록 한 여름에도 긴 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메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녀님들도 아무리 더워도 그 긴팔 수도복으로 몸을 감싸고 있지 않은가?
덥다고 아무 곳에서나 훌러덩 벗고 다니지 않듯이,
더울수록 긴 소매를 입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예의요 그럴수록 상대방을 존경하는 것이 됨을 알 수 있었다.
부끄러웠다.
누가 뭐라고 비난하지 않았지만 마음으로부터 결례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부터는 아무리 덥더라도 끌레셔츠에 양복을 걸치는 것이 예복이라 여기고 실천하고 있다.
물론 겨울에도 마찬가지^^;

반야심경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법문(法文)이 있다.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 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이 이 법문과 통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 나라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시고는 “보라!” 하신다.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또 내가 걷는게♬ 걷는게 아니야♪”라는 노래도 있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그대로 다 진실이 아니고 또 그렇다고 허상도 아니다.

신은 마음을 보고 사람은 겉모습을 먼저 본다고 한다.
이 말도 같은 뜻이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나라는 보이는 사람을 통해 볼 수 있고,
그럴 수밖에 없기에 주님께서는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신 것이 아닐까?
그 때문에 우리는 겉모습을 너무 무시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내면이라고 해서 숨기는 것보다는,
차라리 보이는 겉모습을 통해 내면의 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야 말로 진실된 삶이 아닐까?

내면을 가꾸는 사람이라면 겉모습도 가꾸어야 할 것이다.
내면이 더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겉모습을 소홀히 한다면
게으름을 감추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그분의 나라, 즉 그분이 나와 우리를 통치하고 있다는 증거는
내면에 감추어진 것만이 아니라,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이기도 하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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