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 뒷산이 있어서 참 좋습니다. 30분 코스와 한 시간 코스, 원하는 대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곳, 산책 겸 산행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는 오르막길이 있고 또 내리막길도 있습니다. 큰 산을 산행 하다보면 평탄하고 호젓한 오솔길을 걸을 때가 있는가 하면 가파른 오르막이나 아슬아슬한 절벽 사이를 기어갈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인생도 - 우리 신앙도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때로 희망과 설렘으로만 가득 찼던 맑은 날이 있었는가 하면, 답답함과 좌절과 쓰라림뿐이었던 회색빛깔의 나날들도 많았습니다. 하느님과 이웃 앞에 떳떳하고 의기양양하게 살아가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쥐구멍으로 들어가고만 싶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절실하고 감미로운 하느님 체험으로 가슴 뛰던 때가 있었는가 하면, "과연 하느님이 계시기는 하는가? 이게 도대체 뭔가?"하며 막막해하던 시절도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신앙여정 안에서 참으로 피하고 싶었던 불행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봅니다. 물론 그 순간은 현실적으로 너무도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삶 전체가 뒤흔들렸던 위기의 순간들입니다. 어떤 체험들은 너무도 고통스러웠기에 떠올리기조차 싫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조금씩 세월이 흐르면서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좌절의 순간이야말로 은총의 순간이다.’라고요.
좌절의 순간이야말로 우리 삶 안에 큰 쉼표를 찍게 된 보물과도 같은 순간입니다. 불행했다고 여겨지던 그 순간이 비록 육체적으로 괴로웠지만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바라다 볼 수 있었던 인생의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주님께서 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은, 그 순간은 참으로 하느님을 원망하는 시간이지만 또한 하느님의 은총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던 희망과 구원의 순간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나병으로 시달리던 사람들을 말끔히 치유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예수님은 언제나 인간의 병고를 모른척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고통 앞에 함께 아파하며 함께 고통당하시며 함께 눈물 흘리시는 연민의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고통당할 때, 거듭되는 실패 속에 헤맬 때도 우리가 결코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한 가지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우리를 외면한다할지라도 예수님 그분만은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떠나간다 할지라도 그분만은 끝까지 우리를 떠나가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결코 고통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과 함께 성숙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그 고통 안에서 함께 계심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그 힘든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며, 소리 높여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이 그렇게 온 힘을 다해서 주님을 찾고 또 그분께 매달렸던 것처럼 그런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열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되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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