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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5.수요일
| 루카 복음 17장 11-19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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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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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가 먼저입니다 장재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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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자비가 풍요로우심은 생각할수록 놀랍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 하느님께서는 약자를 ‘편애’하신다는 사실이 아닐까 싶습니다. “너희가 그들을 억눌러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그 부르짖음을 들어줄 것이다”(탈출 22,22)라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니까요. 오늘 치유를 받은 열 사람의 나병환자 가운데 아홉 명은 아마도 사제에게로 갔을 것입니다. 그것은 틀린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일러주셨으니까요. 열에 아홉은 다수결 원칙에 따르면 우위입니다. 열 가운데 아홉이 원하는 일이라면 그것이 곧 옳은 것이고 정의라고 믿는 것이 세상의 잣대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열에 하나에 불과하지만 먼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잣대가 세상의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래서 외롭고 때로는 고독합니다. 하지만 소수일지라도 그것이 변치 않으시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는 일이라면 강합니다. 절대 꺾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믿음의 힘입니다. 오늘 홀로 하느님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셨는지요? 그리고 무엇을 감사하셨는지요? 그분께 엎드려 감사할 것이 지금, 이렇게 온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우리들이 허공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것은 정말 곤란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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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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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사랑의 원초적인 표현이다. 자기 본질의 원천에 이른 인간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은 어쩌면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라 ‘감사하다’는 말일지 모른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하느님 사랑합니다’라는 말의 원초적 표현이다. 미사 중에 성경 봉독이 끝나면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큰 소리로 응답한다. 이는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신 하느님께 대한 일종의 사랑의 고백이다. 감사하는 사람은 그렇게 부모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것은 곧 사랑의 고백이다.
이제민 | 생활성서사 | <말은 시들지 않는다>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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