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믿음은 감사를, 감사는 축복을
제 1독서 : 티토 3,1-7 (우리는 그릇된 길에 빠졌으나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에 따라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복 음 : 루카 17,11-19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본당에서 가난한 가정, 특히 형편이 어려운 50여 가구에 쌀을 나누어 준 일이 있었습니다. 경우에 따라 30㎏과 50㎏의 쌀자루를 나누어 주었지요. 식구가 많은 가정은 50㎏을, 식구 수가 적은 가정에는 30㎏의 쌀이 지급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본당 신부에게 이런 전화가 왔습니다.
“신부님,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왜 우리 집에는 작은 쌀자루가 보내진 겁니까?”
따지듯이 묻는 그 마음이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받은 것에 감사할 줄 모르고 오히려 적게 받았다고 따지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선을 받는 데에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나누고도 오히려 더 나누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경험을 한 셈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런 일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부분인데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은 일과 맞닥뜨리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중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납니다. 부정 탄 사람들로 낙인이 찍힌 채 쫓겨나 살던 이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간절히 외쳤습니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루카17,13)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고 말씀하셨지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루카17,14)
그 말씀대로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이들의 나병은 깨끗이 치유가 되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님께 돌아와 그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는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물으시지요.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루카17,17)
그리고 유다인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일원이 되리라는 장면이 상징적으로 묘사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지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
하느님을 잘 알고,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랑을 일삼던 유다인들은 그토록 원하던 치유를 받고도 왜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유다인 나병환자들은 자기들의 병이 나은 것을 축복과 기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필요에 의해서 하느님께 간절히 요청했지만 정작 병이 낫게 되자 늘 그랬던 것처럼 약을 잘 썼기 때문이거나 자기의 노력으로 치료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배신이며, 불신앙입니다.
이런 모습은 지금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지만 정작 원하던 것을 획득하거나 이루고 나면 하느님께 돌아와 감사할 줄 모릅니다. 스스로가 잘나서 그렇게 된 줄로 여기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한 사람에게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루카17,19)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삶의 자세에 대한 확실한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아홉 사람의 유다인입니까? 아니면 감사할 줄 아는 한 사람의 이방인입니까? ‘감사’는 신앙의 출발입니다. 감사할 줄 모르면 신앙도 사라지고, 축복도 사라집니다.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는 살아가면서 감사 드릴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것에 감사 드리며 살 수도 있지만 매사를 불평 불만 속에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감사 드리며 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