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의 문둥병자 - 김웅태 신부님

2006. 12. 1. 오후 8:03:55

글자

연중 제 32주 수요일  
 
열 명의 문둥병자


오늘 복음[루가 17:11-19]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줄 알아야 한다는 것에 대한 교훈이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레아 사이를 지나시다가 열 명의 나병환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 열 명의 나병환자들 중에는 이상하게도 사마리아 사람이 하나 끼어 있었다는 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을 천시해서 그들을 상종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만나서 이야기하지 않고 피하는 것이 마치 그들에게 공노가 되는 것처럼 멀리하는 처지였는데 열 명의 나병환자 중에 사마리아인과 함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사람은 누구나 공통적인 불행에 처하게 되면, 서로가 "사람이다" 인간이라는 사실만을 중요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그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문둥병이라는 비극 속에서 서로가 고통받는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었을 뿐, 유대인이라든가, 사마리아인이라는 구별을 잊어버리고 함께 같은 처지를 마음 아파하면서,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외칠 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 서로도 하느님 앞에 같은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의식하고 있을 때, 타인을 멸시하거나 할 수 없고 서로를 용서하고 함께 손을 잡고 살 수 있으며, 진정한 기도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사람이 어떤 은혜를 누구에게 받은 다음에 감사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즉, 복음서 가운데 이 장면에서처럼 인간의 배은을 신랄하게 묘사한 곳이 없다고 할 정도이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를 알고 못견디게 부르짖었다.  "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하고,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사제들에게 자기 몸을 보이러 가는 도중에 낫게 해 주셨다.  그런데 자신들이 평생의 절망이요, 살아있지만 죽은 목숨과 같은 그 무서운 문둥병에서 해방시켜주신 은혜를 모두 받았으나, 은혜 받은 것을 알았을 때, 예수께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유대인들이 아니고, 죄인이라고 멸시 받아왔던 사마리아인이었다고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 은혜 받은 적이 없는가?  받았다면 얼마나 진정 감사하는 마음이 얼마만큼 있는가?  누구는 그럴 것이다.  내가 하느님 덕본 것이 무엇이 있기에 그분에게 그토록 감사할 것이 있는가?  나는 내 노력으로, 내 힘으로 여유있게 살아가는데, 그분의 도움도, 그분께 감사할 것도 없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토록 그러한 자신이 자신 만만한 존재인가?  자신의 살아있는 목숨부터도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처지에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에게 속고 있는 것이다.

 (출처: 가톨릭대학교 강론자료집 / 정리: 김웅태 신부)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강론 묵상 모음집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