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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씨앗
어제에 이은 오늘 독서인 티토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제 독서에서는 원로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 자격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독서를 읽고 묵상하면서 느낀 것은 저는 바오로가 열거하는 교회 지도자나 원로의 이런 자격에 해당하는 사항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하고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아내도 없으니 충실한 남편 노릇은 물론 할 수 없고요. (농담입니다.)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 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고 은근히 화를 잘 냅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저는 술을 좋아하고 때로 아주 거칠고 욕심이 무척 많지요. 하나하나 따지면 정말 교회의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 많은 자격들을 다 갖추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교회의 지도자로서 꼭 필요한 것을 바오로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했습니다. 두 가지가 마음에 왔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과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순종한다는 것이 결국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일 테니까요. 다시 말하면, 주님의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늘 그것을 따라 살도록 노력하는 것이겠지요. 사실 이것도 제가 갖추고 있는 덕목은 아니라서 혹시 그래도 제가 위안을 받을 대목은 진정 없는가 하면서 다시 읽던 중에 마지막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라는 구절이었습니다. “그래. 참 여러 가지로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나 마음 아픈 사람들을 보면 마음으로부터 연민이 우러나오고 격려할 수는 있지.” 라고 스스로 자신을 위안해 봅니다.
제가 지금 번역하고 있는 내용 중에서 제게 위안이 되었던 한 꼭지를 나눕니다.
바라보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을 변화시켜서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보게 한다. 성탄절을 한 주 앞두고 나는 플로리다에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내 자리를 찾아 앉고 보니 7살배기 어린이 전국 농구대회에서 경기를 하고 돌아오는 몇 십 명의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둘러싸인 자리였다. 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팀이기에 아이들과 부모들 굉장히 고조된 분위기였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는 굉장했다. 어디 달나라에라도 다녀오는 것 같이 아이들과 부모들은 큰 소리로 떠들었다. 모두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그들이 치렀던 경기에 대해 신나게 떠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감자튀김과 햄버거가 담긴 음식 봉투를 들고 있었고 날카로운 고함소리가 아이들이 던지는 감자튀김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다녔다. 여승무원이 곧 비행기가 이륙하니 모두 자리에 앉으라고 하면서 아이들을 자리에 앉히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만 이방인 같았다. 기분이 영 좋지 않았다.
내 옆자리에는 아주 뚱뚱한 흑인 여자가 두 돌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었다. 그 여자는 샌프란시스코까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갈 눈치였다. 아이는 계속 칭얼거렸다. 그렇게 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아이가 신발로 내 바지를 더럽히는 것을 보자 그녀는 아이에게 빨리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 마침 승무원이 오기에 나는 자리를 바꿔 줄 수 있냐고 물었고, 그녀는 비행기가 만석이라 빈 좌석이 없다고 했다.
마침내 비행기가 이륙했다. 저녁 식사가 나왔을 때 복도를 지나가던 빨간 머리에 주근깨 얼굴의 아이가 코카콜라를 내게 엎질렀다. 그 녀석은 “할머니, 미안해요.”라고 중얼거리고는 쏜살같이 복도를 뛰어갔다. 내 옆자리에 있던 흑인 여자의 아이는 결국 엄마의 무릎에서 미끄러져 내리더니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고 다른 아이들은 소리를 질러댔다. 아이는 자기 형이 앉아 있는 자리로 갔다.
독서를 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나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은 포기하고 옆 자리에 앉은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농구팀에 대해 이야기했다. 팀을 응원하기 위해 보낸 시간이며 이번 시합을 위해 이웃을 돌며 열심히 모은 기금 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아이 둘을 데리고 지금 여기에 있는 이유를 말했다.
“그냥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어요. 아이들이 살아있게 해야 해요.”
그녀가 사는 동네의 이웃 중에는 많은 아이들이 마약이나 폭력에 희생되어 20살이 되기 전에 죽거나 감옥에 간다고 했다. 그녀의 아이들에게 농구는 생명보험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새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아이가 넷이라고 했고 무릎에 있던 아이가 막내였다.
그녀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다. 내가 암 환자들을 위해서 일한다고 했더니 슬픈 얼굴로 이웃집 여자 이야기를 했다. 이웃집 여자도 자기처럼 남편 없이 아이 넷을 데리고 혼자 사는데 6개월 전에 암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받는 항암 치료는 지독하더군요.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을 정도예요. 그녀가 잘 견뎌내기를 바래요.”
그녀는 이웃집 여자의 병과 그녀의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이웃집 여자는 매일 밤 악몽을 꾸다가 깨어나곤 한다는 것이다. 그녀가 이야기를 계속할 때 나는 그녀가 이웃집 여자의 생활을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알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녀의 대답에 나는 너무 놀랐다. 이웃집 여자가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하자 그녀는 아예 이웃집 여자와 네 명의 아이들을 모두 자기 집에 데리고 와서 돌본다고 했다. 벌써 다섯 달째 그렇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녀를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큰 희생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나 자기 우월감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이웃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으니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막내 아이가 돌아와 다시 엄마의 무릎에 앉았다. 그녀는 아이에게 감자튀김을 먹여 주었다. 아이는 몇 개를 받아먹더니 이내 잠들었다. 그리고 조금 있으니 영화 상영을 위해 기내의 불이 꺼졌다. 아이들은 지쳐서 잠이 들었다. 부모들도 잠이 들었다. 나는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왔다. 비행기는 미국 중심부의 상공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옆에 앉은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도 잠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고 해맑았다. 팔에 안겨 자고 있는 아이는 얼굴을 엄마의 커다란 배에 묻고 있었다. 머리에는 햄버거 회사에서 선물한 작은 금관 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