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조성호 신부님

2006. 12. 1. 오후 8:17:15

글자

나해 연중 제 32 주간 수요일.

2006. 11. 15.

중계본동.


티토 3, 1-7.

루카 17, 11-19.


예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시게 될 때,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병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었고, 그래서 마을 밖에 서 있었습니다. 예수를 만났을 때에도 역시 밖에 서 있고, 밖에서 소리를 지릅니다.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7, 13)


그들의 목소리는 간절합니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지만,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고 싶지만 성전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은 구원으로부터 그리고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채 살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그들이 예수님 곁에 갈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소리를 지르며 자신들의 처지를 헤아려달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십니다. 늘 보시는 분으로 존재하시는 주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루카 17, 14)고 하십니다. 구약을 존중하시는 예수께서 구약이 요구하는 바를 행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타의 행위를 보이시지 않는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그들은 신기하게도 그대로 행합니다.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것입니다. 믿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이기에 그대로 해보기로 합니다.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렇게 믿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주님의 치유 범주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전에 말씀하셨던 겨자씨만한 믿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 내가 지금 믿음이 크고 작고가 아니라 그저 말씀하시면 행하는 것이 바로 겨자씨 믿음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에 의한 행함은 찬양과 감사가 어우러져야 하는 것입니다. 얻어진 결과에 대해(그것이 비록 성공이라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감사하는 것이 신앙인입니다. 우리는 간절히 기도하면서도 그 시간이 지나면 주님에 대해서 입을 싹~ 씻습니다. 방금 전까지 간절히 기도하며 간구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리는 내 필요에 의해서만 기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만 존재하는 하느님이라면 분명 나는 신앙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병환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사제에게 갑니다. 얼마 안 가서 그들은 낫습니다. 너무 기쁩니다. 그리고 사제에게 갑니다. 다시 그들은 사람들과 통교를 이룰 것이고, 예배를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을 치유시켜 주신 분이 누구인지를 알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권능을 가지고 치유시켜주신 것을 알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루카는 여기에서 예수께서 바로 하느님과 같은 분임을 보여준다. 예수께 감사하러 온 것이 곧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루카가 예수께 돌아온 단 한 사람에 주목한 것은 다른 이들이 그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과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서 성전에 나아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중심에 예수가 있어야 합니다. 나를 치유해주신 분은 예수님이지, 성전의 제도가 아니며, 사제가 아닙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치유자이며, 구원자입니다. 이 사실을 나머지 아홉 사람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열 사람의 나병환자를 치유해 주셨듯이 바로 이 자리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는 자리입니다. 즉 하느님의 나라가 바로 이 자리라는 것이죠.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을 만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구미에 맞는 말씀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먼저 반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병환자들이 단지 말씀만으로 움직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열 명 중에 단 한 사람만이 감사로 믿음을 보였다는 데에 주목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일차적으로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한 듯 여기는 유다인들을 꼬집고 계시지만, 우리를 향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는 우리를 향해 참담해 하시는 것이죠. ‘치유 받은 사람 열사람 아닌가?’ ‘아홉은 어딨나?’ ‘외국인만이 감사하는 삶을 보여주나?’ ‘어째서 영광을 돌려야 할 사람들이 안 보이나?’ 예수께서는 의아한 것입니다. 그런 의아함이 나를 향한 참담한 심정이 아니길 바랍니다.


부지런히 감사합시다.

부지런히 찬양합시다.

믿는다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그것이 구원했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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