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09 /다해 예수 부활 성야/우리가 온 길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길은 없습니다-조성호 신부님

2007. 4. 9. 오후 2:29:44

글자

다해 예수 부활 성야

2007. 4. 7.

토평동.

 

 

루카 24, 1-12.

 

찬미 예수! 예수 부활! 알렐루야! 어떤 인사말이건 우리의 마음을 기쁘고 평화롭게 합니다. 옆에 계신 분과 인사를 나눠보죠. 아주 행복한 얼굴로 말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은 매우 분주했고, 그 분주함 속에 부활의 기쁨은 묻히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올해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활, 그 부활을 맞기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했겠습니다만, 저는 부활미사를 거행하는 지금 이순간이 아니라, 이번 주 성주간에 그 부활을 맛보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성삼일을 준비하고, 그것을 조합하니 너무나 아름다운 전례가 되고 편안한 것입니다. 제대를 꾸미시는 분들, 성지가지를 다듬는 분들, 현양제대를 준비하고 꾸미는 분들, 성가 연습을 열심히 하는 분들, 그리고 성삼일 예절에 진지한 신앙으로 참여하시는 분들까지…. 이것 자체가 부활이었습니다.

 

 

마산 교구의 이제민 신부는 「예수는 정말 부활했을까?」라는 저서에서 부활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남을 위해 한 번 죽어보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전혀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새로운 삶이 곧 부활이다.”

 

 

주님의 부활은 전례 안에서 재현하는 것이지만, 그 부활은 각자의 삶에서 사랑하며 다른 이들을 위해 희생하는 죽음의 삶을 살았을 때 체험되는 것입니다. 갑작스런 다가옴이 아니라는 것이죠. 아마도 이 부활을 준비하며 분주함 속에 사신 분들, 특히 그 준비함에 기쁨으로 함께 하신 분들은 자신을 희생하는 그 내어줌의 시간 속에서 부활을 맛보았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그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오늘 루카는 부활을 기념하는 우리에게 중요한 단어를 하나 소개합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냈다”(루카 24, 8)

 

 

이 기억이란 단어는 기념이라는 말과 함께 쓸 수 있는 말인데, 예수님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의 말씀, 그분의 행적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공생활을 통한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분의 최후의 만찬, 그리고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미사를 거행하며 그분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기억을 꺼내는 것입니다. 여자들은 예수님의 대한 기억을 꺼내며 예수님을 기념하고 있고, 예수님을 떠나 보낸 후 슬픔에 잠겨 있던 제자들은 부활 이후 예수님의 기억을 꺼내며 그분을 기념하고, 그분과 함께 살았을 것입니다.

 

 

시인 성찬경은 “기억의 길이는 사랑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말합니다. 사랑의 크기가 클수록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죠. 이 여인들, 특히 막달라 여자 마리아에게 있어 예수님의 사랑의 크기는 말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녀에게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그분의 말씀은 누구보다 더 깊이 각인되었을 것이고, 이 여인은 죽음 이후 빈 무덤을 보며 예수님의 말씀을 더 빨리 되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어떤 기억이 있죠? 저 역시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의 기억, 부모님의 기억입니다. 예전에 집에 갔을 때 아버지께서는 더럽혀진 제 구두를 보시며, ‘이 구두가 왜 이렇게 더럽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원래 잘 안 닦인다’고 했죠. 그런데 한참 후에 집에 돌아가려고 구두를 신으려했을 때, 제 구두는 반짝 반짝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께서 광이 안 나는 제 구두를 닦아놓으신 것입니다. 아들의 구두를 닦아 주시는 아버지…. 저는 감사하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오랫동안 아니 평생 저를 따라다닐 것이고,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을 끄집어내며 그분을 기념할 것입니다.

 

 

막달라 여자 마리아도 마찬가지겠죠. 지금 사랑의 기억이 큰 만큼 예수님의 말씀을 끌어내는 시간이 짧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녀의 얼룩을 얼마나 많이, 깊이, 자주 닦아주셨겠습니까? 그 사랑의 깊이만큼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겠죠.

 

 

우리는 예수님의 대한 그 기억을 자주 갖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내가 그분의 사랑을 아는 만큼 실천하는 데에 있습니다. 부활은 체험입니다. 가끔씩 예수님을 만났다고, 예수님을 체험했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의 진실성은 그가 어떤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리고 뿔뿔이 흩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가 전파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를 보고 체험했던 그들의 변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변화가 사람들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기억은 그분을 체험하는 것이고, 그 삶을 사는 만큼의 기억이 깊이 있게 살아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학자 마이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온 길보다 더 안전하고 확실한 길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으며 걸어온 길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길은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을 믿으며 가는 그 길만큼 안전하고 확실한 길도 없습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앞으로 그분과 함께 힘차게 나아갑시다. 내 삶이 그분으로 인해 변화되며 행복할 것입니다. 아니 그분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금 이순간 행복합니다. 아멘.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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