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11.13.월
| 루카 복음 17장 1-6절 | ||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라.” | ||
| 용서의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장재봉 신부 | ||
|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좀 서운하게 느껴집니다. 말 그대로 우리는 믿음의 사람이고 믿은 세월이 얼마인데, 모두를 싸잡아 표현하시고 우리를 좀 얕잡아보시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형제가 죄를 지었을 때 꾸짖습니다. 옳고 그른 것쯤은 확실히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렇게 명하셨으니까 그대로 행하는 복음의 행위이지요. 오늘 바오로 사도도 티토에게 같은 표현을 쓰셨네요. ‘반대자를 꾸짖는 일을 하라.’ 그것도 자신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회개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울화통이 터지다 못해 놀리는 것 같고, 회개를 장난처럼 여기는 것 같아 화를 낼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을 제대로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대가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심판합니까? 그가 서 있든 넘어지든 그것은 그 주인의 소관입니다”(로마 14,4)라고 제 못된 생각을 알아채신 주님께서 말씀하시네요. 제가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일들은 모조리 남을 꾸짖고 판단하는 일뿐인 것을 들켜버렸습니다. 겨자씨보다 작은 이 믿음도 꿰뚫어 보시는 시력 좋으신 예수님! 그 좋으신 눈으로 제 생각과 말과 행위를 지켜봐주십시오. 그래서 하루에 여덟 번 죄를 짓고도 여덟 번 돌아와 용서를 청하는 그 친구 안에 자리한 겸손과 참회를 기뻐할 수 있는 참 신앙을 살게 해주십시오. “불행하여라” 하시는 당신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해주십시오. 예수님! | ||
| 나이 듦 | ||
| 어느 날 사람들이 나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드는 것에서 무엇이 긍정적일 수 있나요? 한 가지만 말해준다면 당신 말을 믿겠어요.” 그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내적인 품격이 육체적인 그 무엇보다 돋보이게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머리카락, 눈빛, 탄력 있는 피부와는 반대로 내적 덕목은 점점 더 완벽해집니다. 내적인 덕목이란 바로 지혜, 덕성, 품위, 남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자세 따위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곧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력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내적인 것이 돋보이려면 그 안에 또다른 무언가가 존재해야 합니다. 육체의 쇠퇴는 내부에서 나오는 빛으로 보상될 것입니다. 수술을 통해 자기 육체를 잘라낼 필요도 없고, 진한 화장도 할 필요가 없으며, 지나치게 화려한 옷을 입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성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숙을 넘어 이미 나이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리아 루프트 | 21세기북스 | <잃는 것과 얻는 것>에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