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제 1독서 : 1열왕 17,10-16 (과부는 제 밀가루로 작은 빵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다 주었다.)
제 2독서 : 히브 9,24-28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복 음 : 마르 12,38-44 (저 가난한 과부가 더 많이 넣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두 과부, 즉 쌍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복음에서는 ‘가난한 과부’라고 표현합니다. 물론 과부라고 해서 다 가난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속담에 “홀아비는 이가 서 말, 과부는 은이 서 말”이라는 말이 있듯이, 독서와 복음에서 상징하는 ‘과부’라는 표현은 보호받아야 할 대상,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소외되고 힘없는 자를 뜻하는 것입니다.
제 1독서를 보면 사렙타 마을의 과부는 극심한 가뭄으로 고생하다가 마지막 남은 음식으로 아들과 함께 그것을 먹고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였지만 하느님의 사람에게 생명과도 같은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로 인해 과부는 단지에서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의 기름도 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으며 죽음의 위기에서 살아납니다. 만일 이 과부가 살아나기 위해 하느님을 믿지 않고 음식만을 의지했다면 역설적이게도 한끼 식사를 마지막으로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사렙타 마을의 과부는 자기도 배고픔과 부족함에 지쳐 있으면서도 목마름과 배고픔에 지친 하느님의 사람 엘리야 예언자에게 믿음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이웃 사랑을 베풀었고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가난한 과부는 예수님의 극찬을 받게 됩니다. 헌금함 맞은 쪽에 앉아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계시다가 가난한 과부의 렙톤 두 닢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불러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마르12,43)라며 궁핍한 중에서도 정성을 다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십니다.
제 1독서의 사렙타 과부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이웃 사랑을 음식으로 실천했고,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진 돈을 모두 봉헌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통해 가장 구차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하느님의 말씀은 가난한 자는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고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하느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나 이웃에게 거액의 돈을 기부하는 행위가 아니라 정성어린, 희생이 따른, 윤리적 가치가 담긴 봉헌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느님에게서 비롯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알몸으로 태어난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셨고, 그 중 제일 좋은 것 1/10을 봉헌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십일조라고 부릅니다.
레위기를 보면 “땅의 십분의 일은, 땅의 곡식이든 나무의 열매든 모두 주님의 것이다. 주님에게 바쳐진 거룩한 것이다.”(레위27,30)라고 하셨고, 말라키서에서는 “너희는 십일조를 모두 창고에 들여놓아 내 집에 양식이 넉넉하게 하여라. 그러고 나서 나를 시험해 보아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하늘의 창문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넘치도록 쏟아 붓지 않나 보아라.”(말라3,10)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통해서 받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하느님께서 직접 보증해 주셨습니다.
얼마 전 독일의 뮌헨시를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주 잘 정돈되고 아름다운 도시와 시골의 모습과 선진국민다운 질서와 평화로움, 또 신자들의 열심한 신앙이 부러웠었는데 뮌헨시 대형빌딩의 80%가 천주교 재단 소유라는 말에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자신이 평생 애써 벌은 재물을 죽은 후에도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결국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천주교회에 헌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관리하기 위한 교구청의 거대한 조직과 대형은행이 뮌헨교구에 설립되어 있었고 전세계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도움이 그곳으로부터 주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하느님과 가난한 이웃을 위한 그들의 봉헌이 하느님의 축복의 근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자기가 거둔 것 중 제일 좋은 것을 하느님께 바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이야기를 통해 받게 될 축복을 말씀하시고 보증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수입의 십일조는커녕 1/30도 제대로 봉헌하지 못하고, 헌금을 위해 잔돈을 준비하기에 바쁩니다.
천주교 신자들의 봉헌은 오늘 복음에 나오는 칭찬 받은 가난한 과부의 정성어린 헌금은커녕 교만한 부자만도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수십 만원, 수백 만원이 아깝지 않지만 하느님을 위해서는 인색하기 그지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교무금과 헌금은 대동소이합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결단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천하는 자의 축복이 얼마나 큰지를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독서와 복음의 가난한 과부들의 정성과 축복이 나의 것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단지에는 밀가루가 떨어지지 않고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1열왕17,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