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 32주일 (나해)
우리들의 정성: 헌금과 교무금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연중 제 32주일에는 헌금 봉헌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어느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해 예수님께서 칭찬하셨던 마르꼬 복음을 인용하면서 저의 말씀을 시작할까 합니다.
1. 어느 가난한 과부의 헌금
우리가 방금 읽은 이 복음에서는 하느님께 헌금을 바치는 올바른 자세와 정성에 대해 나오고 있습니다. 헌금이라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어 우리의 노력과 수고로 벌어들인 돈 중에서 그 일부를 하느님의 일과 교회 사업을 위해 바치는 정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헌금제도는 예수님 당시에도 있었고 위의 복음에서 보면 이 헌금방식이 오늘날 시행되고 있는 헌금제도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그런데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지켜보시던 예수님께서는 많은 돈을 넣은 부자들에 대해서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시고, 겨우 동전 렙톤 2개(이것은 오늘날 화폐단위로 200원에 해당한다고 합니다)를 넣은 가난한 과부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시고 칭찬해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은 헌금 액수의 많고 적음을 보신 것이 아니라 헌금을 바치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의 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그 가난한 과부가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넣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즉, 다른 사람들은 다 넉넉한 처지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그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있는 것을 다 털어 넣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과부라고 해서 다 가난한 것은 아닐 것이고 예나 지금이나 돈 많은 과부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정말 가난하고 불쌍한 과부들도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열왕기서에 나오는 사렙다의 과부(1열왕 17, 10-16)도 가난했고, 위의 복음에 나오는 과부도 가난했지만, 그들은 오로지 하느님께 대한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자기의 없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다 바쳤기 때문에 갸륵하게 보인 것입니다.
2. 정성이 어린 마음으로부터의 예물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진정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당신께 정성을 바칠 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이 포함되지 않은 예물은 그것이 아무리 비싸고 큰 것이라 할지라도 하느님의 마음에 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옛날 하느님께서 카인과 아벨의 제물을 받으실 때에, 카인의 제물은 정성이 없기에 받아 주시지 않고 아벨의 제물은 정성이 포함되어 있기에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또 구약을 보면 유대인들이 하느님께 소와 양을 속죄의 제물로 바치고 제사를 드려 왔는데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마음과 정성이 없이 형식적으로 바치는 것에 대해 화를 내셨습니다.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는 것은 거룩하고 합당한 일이었지만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 근본 정신은 사라지고 그들이 소와 양을 죽여 속죄의 제사를 바칠 때 자기들의 죄가 자동적으로 사해지고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형식주의에 빠졌던 것입니다. 즉,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통회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바치지는 않고 동물을 통해 속죄의 제사만을 바칠 때 하느님께서는 그런 제물을 즐겨 받으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
"너희가 바치는 소와 양은 이미 나의 것이다. 내가 소와 양이 없어서 그것을 받는 줄 아느냐, 내가 즐겨 받는 것은 수천 마리의 소와 양이 아니라 너희의 정성이 어린 마음으로 부터의 예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을 바치고자 할 때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정성을 가지고 바치도록 해야하며 정성없이 혹은 마지 못해서 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께서는 고린토 후서 9장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적게 뿌리는 사람은 적게 거두고 풍성하게 뿌리는 사람은 풍성하게 거둡니다. 각각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내되 아까와 하면서 내거나 마지못해 내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2 고린 9, 6)
3. 우리 신자들의 헌금봉헌 정성
우리가 서두에서 읽은 마르꼬 복음에서, 헌금내는 정성에 대해 나왔으므로 우리 본당의 헌금봉헌 정성에 대해서도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먼저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헌금 봉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한편, 좀 더 하느님의 일을 위해 우리의 봉헌의 실상을 생각해 보는 뜻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즈음 우리 천주교 본당의 일주일 헌금은 대략 평균 1000원꼴입니다. 이것은 2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비해 다른 물가는 몇 배로 뛰어 올랐음에 비해 우리가 내는 헌금 정성은 20년 전의 수준 그대로 입니다.
위에 인용한 마르꼬 복음에서 예수님은 과부가 낸 동전 두닢에 큰 정성이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내는 1,000원 헌금을 보며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그것은 '신앙의 신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의 신비란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은혜에 대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체험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즉 미사 때 빵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써 변화되는 것을 믿으며 우리는 '신앙의 신비'라고 표현합니다. 부자나 가난한 이나 똑같이 바치는 1000원은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바치는 정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마르꼬 복음에 나오는 과부의 헌금처럼 가난한 사람도 1,000원을 내는가 하면 부자도 역시 1,000원을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의 1,000원과 부자의 1,000원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를 것입니다.
4. 천주교 신자들의 교무금 정성
어느 본당에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열심한 신자가 있었는데 개신교 신자 시절에 자기 수입의 10분의 1을 바치는 십일조(十一租)를 지키던 습성이 몸에 배어 개종 후 성당에 나와서도 십일조를 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도 바뀌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교우는 십일조를 지키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까 이제 자기는 명실공히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는 십일조를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연 천주교 신자는 꼭 이래야만 되는 것인지 생각해 봅시다. 성서에 보면 하느님의 몫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십일조였습니다 :
「수확의 십분의 일은 내 것이니, 나에게 바쳐라」(레위 27, 30).
우리가 십일조를 통해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정성껏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교무금의 형태로 봉헌할 수 있겠습니다.
5. 어느 시골 본당신자들의 환히 펴진 얼굴과 교무금
교무금에 대해 한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시골 농촌 본당에 어떤 신부님이 새로 주임으로 부임했습니다. 그런데 신자들의 얼굴이 대체로 어둡고 무엇인가 펴지지 않은 얼굴을 갖고 있기에 이 신부는 많은 재미있는 일로 신자들을 즐겁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많은 노력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을이 되어 수확을 하게 되자 교우들은 그동안 밀린 교무금을 한꺼번에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본당신부는 그들에게 내년부터는 매달 조금씩 분담해서 납부하도록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렇게 얼마간 시행한 후 신자들의 얼굴은 그 전보다 아주 환하게 밝아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자들은 자신들의 의무를 다히지 못함으로써 무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비록 조금의 부담은 되지만 자신들의 의무를 충실히 이해함으로써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6. 누적된 교무금의 탕감과 신앙생활의 활성화
제가 몇 년전 사목활동하던 어느 본당의 경우, 많은 냉담신자, 쉬는 신자들 중에는 그들의 쉬는 이유가 본당에 내야 할 교무금이 상당히 밀려있기에 아예 성당에 나오지 않고 방관하고 있는 신자가 의외로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이 쉬는 신자분들의 이유가 단지 교무금 문제 때문이라면 직접 혹은 간접 면담을 통해 혹은 정 어려우시다면 고해성사를 통해 저와 상담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러한 상의와 상담을 통해 저는 교우들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형편되는대로 납부하게 함으로써, 그 동안 밀린 교무금을 대폭 삭감 내지 탕감해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미 이러한 취지의 말을 듣고 몇몇 교우들이 그들의 재정적 부담 문제를 상담하여 삭감을 받고 교무금을 새로이 신입하여 열심히 나오겠다고 하신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몇몇분들도 구역장이나 반장님을 통해 저와 면담을 약속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들은 정말 용기를 지니신 분이었고 진실된 분들이었습니다. 저는 이 기회에 단지 밀린 교무금 문제로 신앙생활하기 부끄러워 성당에 못나오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신자 여러분들의 즐겁고 보람된 신앙생활을 위해 돕고 싶습니다. 밀린 교무금을 겸손한 마음과 주님의 자비를 바라는 마음으로 탕감받고 떳떳하고 새롭게 책정하여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주님의 사업에 기꺼이 함께하여 명랑하고 보람되고 즐거운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이 되시기를 빕니다.
(김웅태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