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 2006.11.12
| 마르코 복음 12장 38-44절 | ||
|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 ||
| 전부 주님의 것입니다 장재봉 신부 | ||
| 우리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바치는 예물을 대견해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 아쉽거나 필요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이 바치는 봉헌의 행위는 곧 우리들이 하느님을 기억하는 감사의 표시인 까닭입니다. 그런데 오늘 사렙다의 과부를 만난 엘리야가 좀 뻔뻔스럽지요? 물을 달라 해서 뜨러가는데 엘리야는 다시 불러서 청을 합니다. “빵도 한 조각 들고 오면 좋겠소.” 사람들은 절박한 처지를 당하게 되면 여유를 갖기가 어려워집니다. 때문에 물을 달라는 나그네에게 면박을 주기 십상일 것이고 더해서 악다구니를 할 만도 합니다. 과부의 대답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그의 마음이 따뜻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좋으니까 엘리야는 얼른 청을 넣을 수 있었겠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엘리야의 부탁대로 나그네에게 줄 빵을 먼저 구우면서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날 그 빵을 엘리야는 먹지 못했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결코 뇌물을 바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로부터 왔으니까요. 전부 하느님 것이니까요. 내가 지닌 전부를 바쳤던 가난한 과부는 ‘최선’의 것을 바쳤기에 칭찬을 들었습니다. 엘리야에게 줄 빵을 ‘먼저’ 구웠던 과부는 자기가 지닌 작은 것을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 덕분에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무엇으로 내 사랑의 삶을 보여드리겠습니까? 무엇으로 하느님의 가슴을 저리게 하여 큰 축복을 끌어내시겠습니까? | ||
| 그분께로 | ||
| 아침에 아주 재미있는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내용은 이렇다. 천 원짜리와 만 원짜리가 서로 만났다. 천 원짜리가 먼저 만 원짜리에게 안부를 묻는다. “요즈음 어떻게 지내니?” 만 원짜리 대답하길, “나야 늘 즐겁게 지내. 극장에도 가고, 야구장에도 가고, 경마장에도 가고…. 넌 어떻게 지내니?” 천 원짜리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나야 늘 똑같지, 항상 성당 성당 성당….” 우리가 내는 주일 봉헌금에 관한 이야기이리라. 이 이야기를 주위 동료들에게 들려주며 함께 한참 동안 웃다가 문득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 자신의 욕구를 위해선 어떤 것이든 크고 넉넉하게 여유롭게 아낌없이 쓰면서도 하느님께는 가장 작은 것을 봉헌하며 큰 인심 쓰듯 했던 내 모습. 누군가 나를 그렇게 대한다면 얼마나 섭섭할까. 그런데도 하느님은 언제나 날 위해 가장 좋은 것만을 주신다. 나의 짧은 기도와 작은 희생, 깊지 못한 사랑에도 감격해마지 않으시는 분, 그러나 오늘도 나의 욕구와 나의 온 시선이 그분 아닌 다른 것에 쏠렸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김사비나 | 편집부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