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하성호 신부님 *

2006. 11. 23. 오후 3:27:53

글자

연중 제32주일 (1열왕 17,10-16/ 히브 9,24-28/ 마르 12,38-44)

주일 오후 미사에 꼬마 아이들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마치도 천사 같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 대게는 먼 곳을 바라보며 뛰는 것이 아니라, 발밑을 보며 뛰려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뛰다가 자꾸만 엎어집니다. 처음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도 자꾸만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합니다. 초보자는 저 먼 곳을 아직 바라보지 못합니다. 먼 곳을 바라보아야 안정된 모습으로 달립니다. 육상선수들은 출발선에서 이미 목표지점을 바라봅니다. 그 목표지점이 있기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아 달려갑니다.
인생살이나 신앙생활에도 언제나 목적과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고, 신앙생활의 목표는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해지지 않고서는 하느님과 일치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신앙의 목적도 없고, 신앙생활의 목표도 없다면 세상 온갖 일에 얽매여 그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엎어지고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도 아이 같고 초보자 같습니다. 그에 비해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해 거룩한 생활을 하려 애쓰는 분들은 잡다한 세속 일들에는 초연한 자세를 가질 뿐만 아니라 마음을 주님께 온전히 내맡기려 노력합니다.
오늘 독서에 나오는 사렙다의 가난한 과부와 복음에 나오는 렙돈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여인은 바로 자신의 전부를 내맡기는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투신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조금도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가진 것을 봉헌하는 가난한 저 여인들은 주님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요한 12,44).
교무금과 헌금을 바치는 행위는 신앙행위란 말을 우린 자주 들었습니다. 신앙은 행동 하나 둘이 문제가 아닙니다. 존재 자체가 거룩하게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현세적인 이익을 위해 믿음을 가진 사람과 하느님과 친밀함을 나누는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하느님과 친밀함을 나누는 사람은 존재 자체가 거룩하게 변화되어 갑니다. 존재 자체가 거룩한 사람은 오늘 독서와 복음에 나오는 여인들처럼 봉헌을 함에 있어서도 거룩한 마음으로 합니다. 존재 자체가 거룩한 사람이 다른 모든 생활에는 모범적인데 헌금 행위에 있어서만 수전노(守錢奴)가 될 수 있겠습니까?
교무금과 봉헌을 바치는 행위가 신앙 행위란 말을 여러분은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신앙은 하느님의 구원행위에 전인적으로 응답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행위는 당신을 온전히 내어주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절정에 이릅니다. 그 온전히 내어주는 사랑에 응답하는 것은 바로 나를 온전히 바치는 것입니다. 나를 온전히 바치는 행위의 표징으로 감사의 헌금을 바치고 교무금을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무금과 헌금은 나를 온전히 내어놓는 거룩한 정신으로 하여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이 헌금 말씀을 하셨으니 교형 자매 여러분들은 스스로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돈의 액수가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아니면 거룩한 마음이 돈의 액수를 결정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의 거룩한 정성이 돈의 액수 앞에 여지없이 무너지지는 않습니까? 거룩한 마음이 돈의 액수 앞에 무참히 파괴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복음이 들려주는 예수님의 칭찬이 나에게도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헌금을 할 때도 내가 헌금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존재의 거룩함의 표현인지 자신에게 물어보고 주님 대전에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나서십시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와 같이 반복되는 행위는 그 사람 됨됨이를 결정짓게 됩니다. 악한 행위를 계속하면 그 사람 자체가 악하게 되지만, 반대로 거룩한 생각과 거룩한 행위를 반복하면 존재 자체가 거룩하게 변화된다는 것을 꼭 명심합시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면서 우리의 지상 과업을 명하여 주셨습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옛 문답 제1조목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태어났느뇨?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느니라.”
서양 속담에 “행위는 존재에 따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는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마태 7,17-18).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우리 인생의 목적을 바라보며 오늘을 보람되게 살아갑시다. 한 치 앞만 바라보고 살지 말고 우리 삶의 의미요 목적인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감으로써 나날이 우리 존재를 거룩하게 변화시켜 갑시다. 여러분 존재가 거룩하다면 주님께 바치는 교무금이나 봉헌금에 인색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만큼 여러분 자신을 바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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