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중 제 32 주일 |
2006-1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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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요셉 신부님 | |
마르코 12,38-44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율법학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긴 겉옷을 입고 나다니며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그들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이러한 자들은 더 엄중히 단죄를 받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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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은 과부의 봉헌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내용을 전하고 있습니다. 과부는 어떤 사람입니까? 과부는 과수(寡守) 또는 미망인이라고도 하는 이미 혼인을 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홀로 사는 여인을 말합니다. 속담 중에 ‘과부는 찬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과부도 깔끔하게 보입니다. 과부인지 표시도 잘 안 납니다. 남편 시중을 들지 않아도 되는 홀어미의 마음은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그 아픔이 크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하지 못했던 무엇을 열심히 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는 물론이고 자신을 개발하는 일에도 많은 투자를 합니다. ‘과부는 은이 서 말이고 홀아비는 이가 서 말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홀아비는 빈털터리이지만 과부는 어느 정도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 홀아비는 표시가 확 납니다. 웬만큼 깔끔하지 않으면 홀아비인지 금방압니다. 종종 신문에 학교 장학금으로, 또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거금을 기탁하시는 분들을 보면 홀로 사는 할머니들이 많습니다. 홀로 사는 할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과부를 보면, 예수님 시대에는 오늘날과는 달랐습니다. 그 당신 사회적인 활동이나 경제 활동은 모두 남자의 몫이었습니다. 그래서 홀로된 여인은 스스로 경제활동과 사회 활동을 요즘처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아와 더불어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과부와 고아를 돌보는 일은 임금을 비롯한 모든 백성의 책임과 의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가난한 이가 성전에 봉헌을 합니다. 예수님은 부자가 큰 돈을 넣는 것과 가난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제1독서에서도 가난한 과부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마지막 끼니의 식량을 -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했던 그 식량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기꺼이 대접합니다. 복음의 과부도 자기의 생활비를 모두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양으로 보면 얼마 되지 않는 것이지만 엘리야 예언자도 그렇고 예수님도 그렇고, 두 분 모두 축복과 칭찬을 했습니다. 또 특이한 점은 두 분 모두 전부를 요구하신다는 점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부르실 때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전부를 하느님께 맡기고 살 때 나머지는 주님께서 채워주십니다. 보이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보이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 채워주십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은 누가 뭐라해도 그것이 맞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없으면 비우기가 겁이 납니다. 불안해 지고 이리저리 저울질을 하게 됩니다. 잔이 비워져 있어야 새로운 무엇을 채울 수 있는데 내 것으로 가득 담고 있으면 주님의 것이 담겨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지만 아직도 세상의 것에 더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 최종목표를 두지 맙시다. 최종 목적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세상의 것을 도구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며 살아가되 재물은 그 도구인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가 되어 재물을 위해서 하느님을 이용하는 것은 하락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재물을 잘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재물을 이용하여 하느님께로 자신의 온 마음을 봉헌했습니다.
루카복음에서(12,15)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주님의 말씀대로 재산을 잘 사용함으로써 천상에 보화를 쌓고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피와 땀의 결실로 획득한 소중한 것은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게 소중한 것을 많이 가지십시오. 그리고 절약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또한 하느님께서 사랑하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도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마음을 결코 잊지 않을 실 것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