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 1- 민병섭 신부님

2007. 4. 7. 오후 6: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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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목요일 만찬미사

 

 

우리는 사순절의 마지막 시기인 ‘성삼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교회 생활 절기의 절정인 부활절을 준비하는 시기로, 하느님께서 우리들에게 내어주신 크고 깊으신 사랑을 묵상하는 시기인 것입니다. 특히 성목요일부터 주님 부활 대축일 저녁까지를 교회에서는 성삼일이라고 부르며 일 년 중 가장 엄숙하게 이 날들을 지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미 사순시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인 은총과 축복을 체험하지만, 이 성삼일 동안 그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활 성야를 앞둔 성금요일에는 ‘모든 것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묵상한다면, 성목요일에는 당신 자신을 ‘무한히 낮추시고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겸손한 사랑을 묵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미사의 주제는 ‘봉사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들에게 보내주신 목적이요, 바로 하느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주는 행위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우리들에게 보여주신 것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조건 없이 무한히 베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얼마나 우리들을 사랑하고 있는지 그 사랑을 직접 보여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느님은 본래 사랑 자체이시며, 사랑으로 우리들을 창조하셨고 사랑으로 우리들을 돌보고 우리들에게 자신을 다 내어놓는 헌신적인 사랑의 봉사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욕심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스스로 범죄 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버렸으며 하느님을 바라보는 방법을 잊어버렸으며, 자신의 잣대로 하느님을 바라보고 판단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하느님을 사랑이 아닌 엄한 심판자로서 만들어 버렸고,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저 멀리 하늘 높은 곳에서 호령만 하시는 하느님으로 바꾸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옛날에 한 구도자가 한 도사를 찾아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신과 함께 지상을 거닐며 이야기도 하곤 했는데 왜 요즈음에는 하느님을 만날 수도 그분과 이야기 할 수도 없습니까? 신이 우리들에게서 떠난 것입니까? 하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도사는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신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들에게 말을 걸어오지. 다만 옛날 사람들은 아래를 볼 줄 알았고 요즘 사람들은 아래를 볼 줄 모르기 때문이지.

 

바로 오늘 저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이 지상에서의 최후의 만찬을 함께 하시며 당신 스스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심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인간들의 생각을 바꾸어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당신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매우 깊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높으신 어른이 먼 길을 왔을 때, 귀하신 손님을 맞았을 때 집주인은 그를 맞아 발을 씻어주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즉 귀중한 손님을 맞아들이는 것이며, 그분을 위해 ‘봉사할 자세’를 갖추었음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의 이 행위는 상황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발을 씻어드린 것이 아니라,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무한히 낮추신 겸손한 사랑이며, 온전히 당신 자신을 내어주시는 사랑이며, 봉사 받는 자기 중심이 아니라 상대편을 이해하고 봉사하는 사랑임을 행동으로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행위에 대해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요한 13,14-15).

 

저는 오늘 복음을 읽으면서 몇 년 전에 유행하였던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걸어서 하늘까지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지난 추억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너를 생각하게 하는데/ 어둔 미로 속을 헤매던 과거에는/ 내가 살아가는 그 이유 몰랐지만/ 하루를 살 수 있었던 건/ 네가 있다는 그것/ 너에게 모두 주고 싶어/ 너를 위하여/ 마지막 그 하나까지/ 걸어서 저 하늘 까지/

 

물론 이 노래 역시 대중가요이니까, 그 내용이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 가사와 제목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면, 오늘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교훈의 내용을 잘 알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노래인 것 같습니다. 우선 제목을 보면 '걸어서 하늘까지' 즉, 하늘나라에 가는 방법은 걸어서 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우리의 이 두 다리로 걷는다는 의미보다는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 이 세상에서 상대인 ‘너’에게 나의 마지막 하나까지 다 주는 사랑을 행할 때, 하느님 나라에까지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소유하신 모든 것을 다 내 주는 사랑을 발을 씻는 상징직인 행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예수님의 사랑은 그냥 앉아만 있다고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들도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 우리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에서 열심히 사랑을 실천하는 ‘걸음’을 내딛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나의 사랑을 잊지 말고, 열심히 내가 보여준 사랑의 의무를 너의 이웃들에게 행하라. 그때 너희 역시 나처럼 하늘나라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웃의 모습, 또는 그 밖에 내가 만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보여주며 살아 왔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만찬 미사와 발을 씻는 예식을 통해 자신을 무한히 낮추시고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주님의 깊은 사랑을 묵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실천할 때도 진정 그들의 발을 씻어줄 수 있는 겸손한 마음과 봉사의 자세로 사랑을 베풀어야 함도 마음속에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머리나 마음만으로는 완전하게 이룩될 수 없고 바로 우리의 발로 걸어갈 때만이 성취된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이란 주님께서 보여주셨듯이,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통해서 들어나는 신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주님, 당신이 오늘 저희들에게 보여준 사랑을 마음 깊이 새겨주시고, 당신을 뵙게 되는 날까지 모든 형제 자매들을 향해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당신의 사랑을 받는 제자가 되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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