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06 /[묵상] 성 금요일-4

2007. 4. 7. 오후 6:52:57

글자

성 금요일: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


예수님은 당신의 최후가 어찌 될 지 미리 예견하셨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를 넘어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자극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예수님 스스로도 놀랄 뿐입니다.

예수님 안에 계신 아빠의 성령께서 그렇게 내 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돌에 맞아 죽을 뻔 한 분입니다.

여러 차례 논쟁을 거치면서, 실제로 돌에 맞을 뻔했습니다.

그때마다 제자들이 있어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이 그냥 덮고 지나가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언젠가는 나에게 치욕적인 죽음을 안기리라.

가장 치욕적인 것은 아마 십자가에 매다는 것이리라.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그것이 궁금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죽음 앞에 많은 번민을 하셨습니다.

너무나 깊숙이 이 문제에 골몰하셨기에, 때로는 식음을 잊으셨습니다.

너무 애를 쓴 나머지 인상이 굳어져서

제자들이 겁을 집어먹은 적도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게 치욕적인 죽음의 의미는 있는 것일까?

이른바 십자가 죽음의 신학적인 이유를 찾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명상을 많이 하시고, 하느님과 교류의 시간을 많이 가졌습니다.

이른바 고민하고 번민하는 시간입니다. 어둔 밤의 시간이지요.

이유를 찾지 못하면 어둠이요, 이유를 찾으면 광명입니다.

이유를 찾지 못하고 십자가의 그 무서운 장면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습니다.

심문, 태형, 또 심문, 또 태형, 그 무서운 구타와 고문....

십자가, 치욕, 모욕, 고통... 골고타 언덕빼기...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을 못 박히고...

이 생각에 이르면 갑자기 경악을 지르고, 경 끼에 시달리게 됩니다.

아버지, 제가 이 쓴 잔을 마셔야합니까?

달리 방법이 없겠습니까?

아고- 아버지, 아고- 아빠시여...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왜 이리 어둡고, 왜 이리 답답합니까?

아버지, 제 눈을 뜨게 하소서... 보이게 해주소서.

죽음의 의미를 알게 하소서. 밝혀주소서, 아버지...


이렇게 번민을 하고 있을 때 이사야 예언서가 생각났습니다.

야훼의 수난하는 종에 관한 슬픈 노래가

네 개나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얼른 펴보았습니다.

 

첫째 슬픈 노래:

여기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그는 나의 영을 받아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 주리라....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42,1-3)

 

둘째 슬픈 노래:

너는 나의 종, 너에게서 나의 영광이 빛나리라.

네가 할 일은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살아남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만국의 빛으로 세운다.

너는 땅 끝까지 나의 구원이 이르게 하여라.(49,3.6)

 

셋째 슬픈 노래:

나는 때리는 자들에게 등을 맡기고,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 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지도 않는다.

주 야훼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 조금도 부끄러울 것 없어, 차돌처럼 내 얼굴 빛 변치 않는다.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줄 알고 있다.(50,6-7)

 

넷째 슬픈 노래: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고 피해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

그를 찌른 것은 우리의 반역죄요,

그를 으스러뜨린 것은 우리의 악행이었다.....

야훼께서 그를 때리고 찌른 것은 뜻이 있어 하신 일이었다.

그 뜻을 따라 그는 자기의 생명을 속죄의 제물로 내놓았다.

나의 종은 많은 사람의 죄악을 스스로 짊어짐으로써

그들이 떳떳한 시민으로 살게 될 줄을 알고 마음 흐뭇해하리라...

그는 자기 목숨을 내던져 죽었고,

반역자의 하나처럼 그 속에 끼어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그 반역자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기 때문이다.(53,3-5.10.12)


이 대목에 이르러 예수님의 내면이 갑자기 밝아왔습니다.

갑자기 성령의 기운이 감지되고, 어둡고 답답한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이제 결단이 섰습니다.

가자, 저 예루살렘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저 곳으로.

아버지, 찾았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뜻을 찾아냈습니다.

이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아버지 손에 제 영혼을 맡깁니다.

아버지, 이제 다 이루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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