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4주일/하느님을 더 많이 닮은 사람들 - 하성호 신부님

2007. 3. 19. 오전 9:08:23

글자
사순 제4주일(여호 5,9-12/ 2코린 5,17-21/ 루카 15,1-3.11-32)

“먼 옛 날에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쉘 실버스타인이 지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의 시작 글입니다. 그 소년은 매일 나무를 찾아가 나뭇잎을 주어모아 왕관도 만들고, 나무에 올라 그네타기와 숨바꼭질도 하고 사과도 따 먹었습니다. 소년에게 돈이 필요할 때 나무는 자기 열매인 사과를 몽땅 팔아 돈을 마련하라고 하였고, 새 집이 필요할 때 자신의 가지를 다 내어주어 집을 짓게 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 소년이 외국으로 떠나기 위해 배가 필요할 때 나무는 자신의 둥치를 잘라 배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삶에 지친 허리가 꼬부라진 소년이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나무는 소년이 쉬도록 자신의 밑둥치를 내어주었습니다. 나무는 참 행복했습니다.

우린 삶을 살아가며 때로는 이야기 속 소년이 되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합니다. 시종일관 소년으로 남는 사람도 없고, 나무로 남는 사람도 없습니다. 소년처럼만 늘 받으며 살면 그 사람의 모습엔 하느님의 모습이 전혀 없을 텐데, 일생 베푸는 것이 하나도 없고 오로지 받기만 하고 사는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가 하면 나무처럼 일생 베풀기만 하는 하느님 같은 사람도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느님을 닮긴 해도 하느님은 아닌 가 봅니다. 하지만 갑남을녀보다는 훨씬 더 많이 베푸는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분명 그들은 하느님을 더 많이 닮은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을 흔히들 <탕자의 비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복음을 읽는데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두 팔을 활짝 펼치시고 아들을 향해 뛰어나가시는 그 행복한 모습의 아버지는 마치 아낌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행복해하는 그 나무와 같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엔 자애(慈愛)라는 말이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어디 자애라는 말이라 한 들 두 팔을 펼치고 뛰어가는 그 아버지의 모습을 다 담을 수야 있겠습니까! 그 모습을 상상하면 그저 그 품에 마냥 안기고 싶습니다.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에 비친 아들의 모습은 가련하게만 보입니다. 온갖 변명거리를 요리저리 끼워 맞추며 느릿느릿 아버지의 집을 향하는 아들의 저 가엾은 모습이 어쩜 우리의 적나라한 모습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우리 자신에게도 가련한 아들의 모습도 있고,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도 있습니다. 자애로운 모습이 우리 안에 더 많으면 우린 자애하신 하느님을 더 많이 닮았을 것이고, 아들의 모습이 우리 안에 더 많이 있으면 우린 죄의 모습을 더 많이 닮았을 것입니다. 완전한 하느님의 모습도, 그렇다고 완전한 죄의 모습도 우리에겐 없습니다. 우린 삶을 통해 자애로운 하느님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회개를 통해 죄의 모습을 줄여보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께 한 발 더 다가가길 희망합니다.

또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린 우리 개인의 모습만이 아니라, 우리 교회의 모습도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에 비추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는 분명 아들을 향해 팔을 펼치고 뛰어가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힘에 겨워 비틀거리는 아들들을 감싸 안아주고 그들에게 쉼터를 베풀어주지 못하는 현실 교회의 모습에 마음 아파해야 합니다. 수많은 그리스도 교회들이 문전성시를 이루면서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고 외칩니다. 한 주일 헌금만 해도 수억을 거두어들이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그 교회가 과연 예수님이 제일 가보고 싶은 교회이겠습니까? 자애와 나눔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팔아먹는 장사꾼입니다.

물론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전혀 갖추지 않은 교회야 있겠습니까? 하나 교회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그 아버지를 얼마나 빼닮고 있는지를 되돌아봐야 하고, 교회가 지닌 사회적 책무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난 번 여러분들께서는 사랑의 마음으로 사회복지 후원회에 가입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그 사랑의 마음은 여러분 안에 갇혀 계시는 주님을 활짝 드러내는 복음 전파의 행위인 것입니다. 이 책무를 게을리 했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탕자처럼 우린 회개의 삶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 아낌없이 내어주고도 행복해 하는 저 나무처럼 우리 자신의 모습과 교회의 모습을 바꾸어가는 일꾼으로 불림을 받았습니다. 우리를 이러한 사명에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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