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의 수호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2007.3.19.월
| 마태오 복음 1장 16.18-21.24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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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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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손의 삶 허찬란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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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동기 신부가 신학교 시절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로 강론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항상 원칙을 강조하시고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시며 사신 분인데다 자녀들을 기쁘게 하느님께 봉헌하시고 늘 무욕의 삶을 사셨다고 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하느님의 뜻을 우선하셨다는 등의 이야기였는데 머리로 듣지 않고 마음으로 감동했기에 내용은 자세히 생각나지 않지만, 그의 아버님의 모습에서 참 겸손함을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생전에 자녀들에게 자신이 죽고 나면 화장을 시켜달라고 하셨답니다. 아무것도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대로 말씀을 못하시는 분이셨으나 삶에 있어서 너무나 훌륭하셨던 분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님이 몇 해 전 돌아가셨습니다. 생전의 말씀처럼 산화하여 가셨는데 동기 신부의 형제들과 모친이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에서 또 감동을 맛보았습니다. 오늘 요셉 성인의 축일을 맞아 제 동기 신부 아버님의 모습과 함께 요셉 성인의 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나의 아버지는 목수이시다. 나의 아버지는 겸손하시다. 나의 아버지는 가난하시다. 나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신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율법으로 가르치신다. 나의 아버지는 말씀이 없으시다.” 성경은 예수님의 양부이신 성 요셉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실제로 그분의 삶이 드러나지 않아서일까요? 묵상 끝에 그분 삶이 그러셨기에 그분 삶에 대한 회고도 그렇게 조용하리란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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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각 맞추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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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도 그림 조각 맞추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우리가 인생이라는 그림 조각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둡고 칙칙한 그림 조각까지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은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인생의 어떤 조각들은 받아들이고 어떤 조각들은 거부하거나 무시한다면, 예를 들어 성공의 기쁨이나 축제의 시간만을 인정하고, 고통스러운 시간들과 실패와 좌절을 체험했던 순간들은 거부하며 어두운 구석에 감추어둔다면, 인생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볼 뿐이지 결코 전체적인 모습은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림 조각 놀이에서 어두운 색깔의 조각처럼 나에게 찾아왔던 고통이나 슬픈 사건들도 내 인생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추고 싶은 마지막 한 조각까지도 삶의 선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마지막 한 조각으로 마침내 그림이 완성되니까. 우리는 완성된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 모르고 그림 조각 맞추기 놀이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이나 슬픔이라는 삶의 조각을 가지고 그들의 아름다운 삶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삶의 조각들은 전체 인생이라는 그림에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결국 그 조각들이 한 사람의 삶을 얼마나 아름답게 수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아름다움은 삶의 조각들을 그것이 비록 어둡고 칙칙한 색깔이라고 하더라도 부정하는 사람들은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고통이나 슬픔이라는 삶의 조각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종의 커다란 힘이다. 고통이나 슬픔을 받아들이고 거기서 지혜를 배우면서 우리의 삶을 완성시켜 나가야 하리라. 레이첼 나오미 레멘 | 이루파 | <그대 만난 뒤 삶에 눈떴네>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