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3.18 사순제4주일 (주제:가장 좋은 비유)루카15,11~32
우리는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탕자의 비유라고도 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러시아의 Dostojewski(도스토옙스키)작가는 좋은 글을 많이 쓰셨는데 그 가치는 예수님의 이 비유 하나만큼도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복음중의 복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의 아름다운 메시지는 그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입니다.
유산을 일찍 달라고 했던 작은 아들은 그것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먹을것도 없는 알거지가 되었습니다. 잘 못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제 정신이 들고 뉘우치는 마음으로 아버지 집에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아들로서 돌아갈 자격이 없어서 일꾼으로서 돌어가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놀라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지요.
아버지는 소식이 없었던 이 작은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직 멀리 떨어져 있었을 때에 아버지가 알았습니다. 형편없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외면하지 않고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런 말이 비유에 나오지 않지만 아들이 했던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못된 이 아들을 아들로서 받아드렸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기고 즐거운 잔치를 벌이셨습니다. 아들이 감히 생각지 못한 대우입니다.
그렇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 유산을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유산을 없앤 동생을 이렇게 환영하는 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크게 원망했습니다. 그때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우리도 즐기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유의 형제들처럼 우리도 넘치는 사랑의 대상입니다 : 비유가 보여주는 그 좋은 아버지는 바로 우리들을 무척 사랑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신자로서 사는 것은 바로 이 큰 사랑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