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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젊은 여인이 결혼을 앞두고 잔뜩 주눅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랑 집은 부유한데 자기 집은 가난한데다가 아버지는 꼽추였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함께 하객들 앞에 나서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고민 끝에 예식장에서 입장할 때만은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들어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 때문에 여인은 오빠에게 따귀를 얻어맞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정작 아버지는 딸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 안쓰러워하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걱정 말거라. 요즈음은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아파 오니, 그 날은 식장에도 못 갈 것 같구나. 그러니 마음 아파하지 말고 그렇게 하여라.” 하지만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들어선 딸은 덩그러니 홀로 남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을 아버지를 떠올리며 결혼식 내내 울고 말았습니다.
결혼 후, 아이를 갖게 된 딸은 입덧에 시달리며 친정 음식이 그리웠습니다. 어느 날 시댁 식구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섰는데, 동네 슈퍼마켓 근처에서 우연히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딸은 아버지를 못 본 채 그냥 지나쳤는데, 그 날 저녁에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보따리 하나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속에는 아버지가 연필로 서툴게 쓴 쪽지와 함께 음식이 들어 있었습니다. “네 어미가 오려고 하다가 일 나가서 못 오고 내가 대신 가지고 왔다. 하나는 청국장이고 하나는 겉절이다. 배곯지 말고 맛있게 먹어라.” 아버지는 임신한 딸의 시집 근처에 와서 평소에 딸이 즐겨 먹던 음식과 쪽지만 전해 주고 간 것입니다. 딸은 그 쪽지를 읽으면서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불효하는 딸을 나무라지 않고 큰 사랑으로 감싸 준 꼽추 아버지의 모습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자애로운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아버지는 ‘당신은 내게 죽은 사람이다’라는 듯이 자기 몫의 유산을 달라고 떼를 쓰는 불효막심한 아들의 청을 선뜻 들어 줍니다. 더욱이 그 재산을 흥청망청 다 쓰고 알거지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나가 반갑게 맞아들여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러자 큰아들은 아버지의 처사가 불공정하다고 분통을 터트립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사랑이 인간의 이해와 상상을 넘어선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하느님이 우리의 이해와 상상력을 뛰어넘는 자애로운 아버지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하느님은 이집트 종살이에서 구해 낸 이스라엘 백성이 반항과 배반을 거듭했지만,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먹고 살게 해 주십니다(제1독서). 또한 때가 차자 불충한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당신 아들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제2독서). 우리 모두 이런 하느님의 헤아릴 수 없는 큰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분을 닮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현재의 우리 모습이 큰 아들 혹은 작은 아들과 비슷하더라도, 미래의 모습은 자애로운 아버지를 닮아야 할 것입니다.
손희송 베네딕토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