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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은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게 만드시는 자비시다
내가 여기에 왜 와 있는가? 그런데 시작 때는 그 정의감에 그 가치에 그 대의에 당당했건만! 이제는 내가 여기에 왜 이렇게 이런 몰골로 있는지? 이제 돌아갈 수도 없다. 어디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저기 바위 끝에 앉아 먼 발치를 바라보는 저 사람은 나에게 어떤 길이 더 지름길인지도 알면서 또 목적지가 어딘지도 알고, 그곳에 가면 내가 전에 살던 동네보다 더 나은지 어떤지도 안다는데 도대체 보름여 날을 끌고 오면서도 한 마디 대꾸도 그렇다고 나의 인격은 고사하고 처지도 묻지 않으니 지금 달려가서 어떻게 하고 싶지만 이 추운 야밤에 그 자를 없애버리면 나는 너무나 지금보다 더한 곤경에 빠지게 되기에 나 나름대로 살려둘 가치가 있어 이대로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 자신의 무능함에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주머니 한 구석에 아직 아껴 피다 남은 꽁초 한 개피를 불에 댕겨 길게 들어마시고 품어 내어본다. 그 때 허공을 흩날리는 담배 연기 속에 비친 달빛에서 "네 속에 들어갔다 나온 연기 속에도 나는 살아있다"라는 선명한 음성이 나의 전율을 데웠다. 그렇다! 나는 내 속에 들어가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아니 들어 갔다해도 이내 나와 작은 느낌을 확장하여 옷을 만들고 가락지를 만들고 음식을 해 먹으며 잔치상을 차렸다는 사실을… 나는 한가지로되 한가지에만 매진치 않고 다양한 면이 풍요롭다는 가치관에 혼동되어 온 나의 역사가 어지러웠다는 고백을 아니 외치고 싶었다.(루가 15, 17∼20)
오늘 나는 나와 함께한 사람들을 '용서'라는 교훈 아래 그들의 경륜을 보고 가치매김했던 나의 기름기를 씻으려한다.(루가 15, 29) 육안으로 보여야만 경치가 아니라 본연의 자리에서의 기쁨이 경관이라는 사실을 보았다. 그것도 잠시 있는 듯하다 사라지는 담배 꽁초의 연기 속에서 비친 달에 의해 말이다. 이제야 한 글을 새긴다. 하느님은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게 만드시는 자비시다.(루가 15, 32) |
하느님은 쓸모없는 것을 쓸모있게 만드시는 자비시다 - 박갑조 신부님 /2007.03.18
2007. 3. 18. 오전 8: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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