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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
루카 복음서에서 오늘 복음구절을 찾아보면 ‘되찾은 아들의 비유’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어린 소신학생 시절의 한 장면을 떠올립니다. 정진석 추기경님이 그 당시 저희 반 담임 신부님이셨고 라틴어를 가르치셨습니다. 당시 교재는 15세기의 독일 가톨릭 신학자 에라스무스가 성경을 재해석하여 쓴 라틴어 성경이었습니다. 어느 날, 바로 오늘 복음 구절을 독해하던 중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갑자기 저희에게 “동구 밖에 나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와 지쳐서 돌아오는 작은 아들 중에 누가 먼저 상대를 알아봤을까?”하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학생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러자 신부님께서는 그 다음 구절을 읽어 주셨습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이가 더 먼저 알아보았다.” 에라스무스의 멋진 표현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어느 성서학자는 이 복음 구절의 제목이 틀렸다고 합니다. ‘되찾은 아들의 비유’라면 집 나간 아들이 주인공인데, 이 이야기의 주제는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이고 그렇다면 이 비유의 주인공은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의 제목을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라고 써봅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마치 하나의 단편소설 같은 이 이야기는 신자든 비신자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고 감동적입니다. 오늘 주일을 교회는 ‘Laetare(즐거워하여라) 주일’이라고 부르고, 제대도 꽃으로 꾸미며, 사제의 제의도 장미색으로 합니다. 보속과 재계의 시기인 사순절에 이 무슨 일일까요? 오늘 미사의 입당송으로 이사야 예언서에서 인용된 “예루살렘아, 즐거워 하여라”라는 구절로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즐거워해야 할 이유를 오늘 복음에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참으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무시하고 돈을 최우선으로 꼽습니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도 모두가 경제회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경제만 회복되면 우리는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질 못합니다. 어느 날 정신이 들 때 우리가 너무도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을 잃어버렸음을 깨닫고, 그 잃어버린 가치를 회복시켜 주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다시 아쉬워할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 돌아가면 아버지께서는 사랑으로 받아 주실 것입니다. 꼭 이렇게 악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아닙니다. 이 회개의 사순절에, 그 중에서도 오늘 지금 다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받아 주실 것이고, 우리는 다시 삶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은 참으로 ‘즐거워하여라. 주일’이 될 것입니다. ● 백남용 바오로 신부·가톨릭대학교 교회음악대학원장 |
[강론]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ㅣ백남용 바오로 신부님 /2007.03.18
2007. 3. 18. 오전 8:2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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