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간 금요일 /지난 여름의 사건 - 김윤복 신부님

2007. 2. 16. 오전 9:12:59

글자

연중 제6주간 금요일


복음 : 마르코 8, 34-9, 1


찬미예수님


오늘은 작년 8월 26일에 YTN뉴스에서 전하는 한 사건기사로 강론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40대 남자가 물에 빠진 초등학생을 구한 뒤 자신은 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숨졌습니다. 오늘 오후 5시쯤 강원도 영월군 문산리 동강에서 인천시 가정동에 사는 48살 김 모 씨가 물에 빠진 9살 김 모 군을 구하고 자신은 물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다가 결국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목숨을 던져 어린 아이를 구한 한 남성의 희생에 대한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영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남을 구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한 채 숨진 죽음에 대한 사건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여름의 이 사건은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연결되어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


우리는 누구나 단 한 번뿐인 삶과 하나뿐인 목숨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목숨이 두 개이거나 두 번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단 하나뿐인 목숨을 가지고 단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갑니다.


이 삶은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실수로 보지 못한 부분을 다시 보기위해 비디오 테이프를 거꾸로 돌리는 그런 일을 인생에서는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지금 이루어지고, 한 번 일어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생명은 더욱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생명이 끊어지면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생명이 끊어진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훌륭한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있어도 숨이 끊어진 사람은 아무것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의 목숨보다 더 귀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난 여름의 이 사건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어린 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죽어버린 이 40대 남성은 실수한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말씀을 전해주고 계십니다. 그 말씀은 이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르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이제는 더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하시던 예수님께서 이제는 목숨을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어디로 가시고 어떻게 되셨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당신의 사형장인 골고타 언덕으로 가셨고 거기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처럼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사도신경을 기도하면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습니다.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실 영원한 삶을 믿으며 우리의 신앙을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삶, 이 삶은 어떤 삶일까요? 단순히 지금 우리의 삶, 육체를 가지고 사는 이 삶이 영원하게 지속되는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병들거나 늙어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고백하는 영원한 삶은 우리가 완전한 모습으로, 하느님 사랑 안에서 누릴 구원된 삶입니다. 애초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잠시 지나갈 삶인 것이지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영원한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삶 또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삶입니다. 차이점은 이 삶은 지나가기 위한 과정의 삶이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결과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과정의 삶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서 사는 우리의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한 준비를 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준비 없는 여행은 매일이 고생일터인데 그 삶이 영원하다면 그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사는 과정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삶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받고 나누는 방법을 배우고 익힙니다. 남을 도와주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처럼 ‘하느님 사랑을 배움’의 완성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이웃을 위해 죽는 것입니다.


이 죽음은 목숨을 끊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자신의 욕심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영원한 삶을 살 준비를 마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은 아직 이 세상의 삶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과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삶을 산 사람을 우리는 보통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지상에서 천상의 삶을 산 사람들인 성인들처럼 여러분들도 자신의 의지와 욕심을 죽이는 죽음 안에서 새롭게 살아나는 삶을 발견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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