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해 연중 6주일 루카 6, 17.20-26- 왜, 누구 때문에 행복한가?
누군가 사제인 저에게 ‘예수님 때문에 피해를 당할 수 있는가? 곧, 매를 맞는다거나, 사람들에게 조롱과 수모를 당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할 수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제가 아니라 인간 이찬홍에게 묻는다면... ‘만약 지금이 박해 시대와 마찬가지로 신앙인 이라는 이유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그래도 믿을 수 있겠는가? 그때도 진정 기쁜 마음으로 사제가 될 수 있겠는가?’ 라며 저의 솔직한 마음을 묻는다면, ‘네’ 라는 대답에는 그리 자신이 없습니다. 다만, ‘나도 수많은 순교자처럼 예수님 때문에 죽임을 당하면 좋겠다. 그러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할 것이다.’ 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습니다. 강론을 정리하며 이런 제 모습을 보니, 믿음이 약한 날라리 신부 같습니다. 오늘 복음은 참된 행복과 불행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복음은 박해 상황을 알려줍니다. 박해를 참아 받으면 행복한 사람이며, 박해를 참아내지 못하고 배교를 해버리면, 불행한 사람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교회 안에 수많은 순교자들을 생각하며 참된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제주의 첫 신앙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맞습니다.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입니다. 작년에 첫 신앙인이요, 첫 순교자인 김기량 펠리스 베드로 순교자를 기념하는 현양대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를 기념하는 현양 대회에 참석하여 그분의 삶과 신앙을 본받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 역시, ‘지금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수많은 후손들을 보며 흐뭇해하시겠구나.. 참 행복해 하시겠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김기량 펠리스 베드로 순교자는 행복하기만 했을까요?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는 펠릭스 베드로 순교자의 모습을 보며, 참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안 믿겠습니다. 이 한마디만 하면 살아날 것을...’ 이라며 나무랐을지도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순교 성인성녀들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동정 부부 순교자의 마지막은 더욱 처참합니다. 일가족이 몰살당하고, 집은 폐허가 되고, 그 터에 연못이 생겨 버립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이유로 그렇게 되어 버리는 모습을 보며, 누가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어리석은 사람이요, 불행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불행하게 죽임을 당한 분들의 삶이 불행한 삶이 아니요, 죽음이 불행한 죽음이 아님을 순교자들은 알았습니다. 우리 또한 그분들이 비록, 육체적인 고통에 아파했지만, 웃으면서 순교했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께만 신뢰를 두었기 때문에 자신을 비롯한 온 가족이 순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처참하게 죽어가지만, 자신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많은 사람들의 눈에 불행한 삶이요, 죽음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기쁘고 행복한 삶이요, 복된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행복과 불행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는 행복과 불행이 앞으로 100년, 1000년이 지난 후에, 우리 후손들이 우리의 삶을 보며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생각을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며 불행하다하고, 우리가 불행하다고 하는 것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고 누리려는 행복과 불행의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과 수많은 순교자들은 우리에게 참된 행복과 불행의 그 판단기준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지금 느끼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하기 때문에 느끼는 것인가? 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지금 불행하다면 그 불행은 기쁨과 행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홀로 행복을 느낀다면 그 행복은 불행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행하기보다는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독서는 참 행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 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그의 마음은 주님에게서 떠나 있다... 그러나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 그는 물가에 심긴 나무와 같아 제 뿌리를 시냇가에 뻗어, 무더위가 닥쳐와도 두려움 없이 그 잎이 푸르고, 가문 해에도 걱정 없이 줄곧 열매를 맺는다.” 나는 어디에서... 그 누구에게서 행복을 찾고 있으며, 얻으려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행복하여라.” 오늘따라, 화답송의 후렴 말씀이 참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아멘. |
다해 연중 6주일 루카 6, 17.20-26- 왜, 누구 때문에 행복한가? - 이찬홍 신부님
2007. 2. 12. 오전 10:27:07
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