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부산교구 초량성당 차공명 신부
2월 11일 연중 제 6 주일/세계 병자의 날
복 음 : 루가 6, 17. 20-26
만일 사업의 성공으로 감사미사를 드리러 온 신자에게“사업이 잘되는 것이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그러느냐?”라고 한다면 그 신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반대로 경제적 실패로 실의에 빠진 신자에게“당신은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런 식의 말씀이 오늘 복음의 내용이다. “가난한 사람, 굶주린 사람, 지금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하시고“부유하고 배불리 먹고 지금 웃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은 불행하다!”하신다. 도대체 이해하기 힘든 오늘 예수님이 정의하신 행복과 불행은 어떻게 알아들어야 될까?
오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와 유사하지만 설교를 행하신 장소가 산이 아니라 평지이기에 평지설교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특별히 가난함에 있어 마음이라는 단서가 붙지 않고 나오는 점과 산상설교에는 없는 불행선언이 있다는 것이 산상설교와 구분되는 특징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오늘 복음의 행복과 불행 선언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예수님의 주 활동 대상을 아는 것이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언제나 사회의 밑바닥 계층과 생활 하셨다. 각종 장애인들과 혐오스런 병자들, 과부, 세리, 심지어 창녀들까지. 예수님 주위에 모여서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은 별 볼일 없거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예수님 자신과 12제자들도 거의 시골 출신의 노동자들이었다. 이렇듯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주 활동 대상은 하류 계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의도는 명확하다. 예수님은 이런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고 이들에게 이 세상을 초월하는 희망을 주시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 말씀의 이해하기 힘든 표현도 쉽게 이해된다. 그건 지금 가난하고 배고프고 실의에 빠진 이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고 그들에게 이 세상의 행복만이 전부가 아님을 알려 그들에게 희망을 주시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말씀인 것이다. 덧붙여 우리는 오늘 복음 말씀을 통해서 우리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바를 찾는다. 다름 아닌 이 세상에서 불행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그들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은 이렇듯 불행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