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목마름을 호소하셨다
예수님 말씀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할까? 지금 굶주리는 사람이 행복할까? 지금 우는 사람들이 행복할까? 주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 쫓기고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행복할까? -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들은 불행하다. 예수님 말씀처럼, 부요한 사람들이 불행할까?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이 불행할까?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이 불행할까?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불행할까? -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들은 행복하다.
올해로 아흔을 넘긴 할머니가 있습니다. 5평이 되지도 않는 방에 홀로 기거하고 계십니다. 눈도 어둡고 귀도 어두워 졌습니다. 냉장고에는 언제 해 놓은 지도 모를 오래된 음식들이 약간 있습니다. 조그만 밥상에는 바닥이 보이는 말라붙은 찌개가 있습니다. 할머니에게는 딸이 한 명 있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어머니를 도저히 모실 수 없으니 양로원을 알아 봐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여기 저기 알아보니 한 양로원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가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었습니다. 생활보호 대상자로서 월 30만원을 받고 있는데,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할머니의 딸에게 포기할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 지금도 할머니는 5평이 되지도 않는 방에 홀로 기거하고 계십니다.
어느 누가 할머니의 딸에게 “당신은 불효자요.” 하고 비난할 수 있을까? 저는 못합니다.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할머니에게 “할머니, 당신은 가난하기에 행복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할머니의 것입니다. 할머니 행복하시죠?” 하고 말할 수 있을까? 저는 말 못합니다. 도저히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단순히 예수님의 이상(理想)인가? 당신의 말씀이 실현될 것이라는 예언(豫言)인가? 아니면 저 세상(천국)을 염두에 둔 말씀인가? 예수님께서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루가 4,21) 하신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예수님은 “목마르다.”(요한 19,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증을 느끼기만 한 것이 아니고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행위를 통해서 그것을 암시하거나 그런 행위들이 그 갈증을 해결하길 바랐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항상 갈증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우리)들에게 기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요한 21,15)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당신의 목마름을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이세형 유스티노 신부 ( 천주교 부산교구 반송성당 주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