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6주일, 세계 병자의 날 2007.2.11.
| 루카 복음 6장 17.10-26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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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과 믿음 이정호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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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고 지내는 분 중에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 걸어다닐 수 없을 만큼 고생하고 계신 자매님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집안 형편 역시 그러해서 방의 천정이 낡아 결국 무너져 내려앉았지만 수리할 여유가 없어 그냥 그대로 지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옆에서 보는 것과 달리 본인은 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계십니다. 자신의 어려운 처지를 절망하지 않으며,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기쁘게 살아가는 자신의 태도를 보고 어느 누군가가 하느님을 믿고 살아가는 참된 기쁨의 길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하는 분입니다. 내게 이익이 되는 좋은 일이 많아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힘겹고 한숨나오는 상황이지만 하느님께서 돌보아주시고 이끌어주신다는 희망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을 줍니다. 가난하고 굶주리는 이들, 생활의 힘겨움에 우는 이들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은 비록 가난하고 굶주리며 세상살이의 짐이 무겁게 내리누르지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고 자신을 붙잡아주시리라는 희망의 약속을 마음에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과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것을 누리며 산다 하더라도 그들은 불행합니다. 행복은 무엇을 얻어 누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희망하며 어떤 마음으로 사는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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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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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을 나와 프란치스코와 클라라, 그리고 가난한 수도자들의 탁발 행렬이 이어졌던 거리를 삼소회 수도자들이 걷고 있었다. 스스로 걸인이 되고, 스스로 동식물의 친구가 되었던 이들이 걷던 길이었다. 나는 그 길에서 우리나라에 왔던 프란치스코와 수많은 클라라를 생각했다. ‘동방의 프란치스코’로 불리는 이현필 선생이 떠난 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그의 삶을 따르는 이들이 사는 경기도 벽제의 동광원 분원을 얼마 전에 찾았다. 이현필 선생은 전라도 무등산 일대에서 폐병 환자와 고아들을 돌보면서, 자신은 거의 먹지도 입지도 않은 채 눈길을 맨발로 걸으며 고행의 삶을 살다가 벽제 분원에서 1963년에 별세했다. 동광원에선 수녀라는 말 대신 순우리말 언니의 높임말인 언님으로 부른다. 내가 갔을 때 그 공동체 원장이기도 한 박공순 언님은 홀태에 몇 단도 안 되는 벼를 훑고 있었다. 논에서 바로 벼를 탈곡하는 세상에, 농업박물관에서나 찾아봄직한 홀태를 그는 아직도 쓰고 있었다. 수도복을 입지 않고 평상복으로 살아가는 할머니 언님들은 겨우살이용 나뭇단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찬 부엌에서 땔감으로 군불을 지피고 있었다. 40년 전 그곳에 정착한 뒤 버려진 땅 4천여 평을 개간해 농사지으며 농약 한 번 쓰지 않고 사서 고생해온 이들이었다. 편리함과 성공만을 좇는 세상에 언님들이야말로 바보 중 바보였다. 공순 할머니는 “숨쉬는 것이 기도지요. 하느님이 주신 공기를 마시는데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소”라고 했다. 남의 것을 송두리째 빼앗고도 면피성 동정을 베푸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 가난한 곳에 처하면서 자족하고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위해 헌신하며 공기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한없이 감사하는 언님들을 보며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조연현 | 비채 |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