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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니" 김순곤 비오 / 덕산동 본당 주임신부
오늘 말씀에서 얼핏 생각할 수 있듯이, 재산도 명성도 없는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인가?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이 말하는 ‘부자와 가난한 자’ 간의 단순 대비를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세상 앞에서 부요한 자들’과 ‘하느님 앞에서 부요한 자들’을 대비시키신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진정 행복한 자들’은 이미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에 속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희망을 두며, 하느님을 자신의 유산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럼 예수님께서 ‘불행하다’고 선언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런 사람은 ‘자신의 위로책’을 갖고 그것에 자만자족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마치 욕심스런 부자(루가 12, 13-21)처럼 자신의 모든 ‘재산과 부’를 이 지상 것에 두고 사는 사람이다. 자기 인생과 자기 미래를 ‘오직 그리고 전부’자신의 능력과 자기가 소유한 수단들만으로 엮어나가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자신이 부자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놀라운 가난뱅이’이다. “너는 스스로 부자라고 하며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네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 벗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묵시 3, 17).
성서는 몇 가지 표상을 통해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가난해 보이지만 사실은 부자인 사람들’은 ‘주님께 믿음을 두는 사람으로서, 마치 시냇가에 심어진 나무인양 제 때에 열매 내고 잎이 아니 시드는 나무’와 같다(화답송. 예레 17, 8 참조). 그들은 바위 위에 자기 집을 짓는 사람(마태 7, 24-27 참조)과 같아서, 폭풍과 비바람에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부자인 듯 하지만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은 ‘들판에 자라난 덤불과 같고 어느 쪽으로 뿌리를 뻗어도 메마른 모래만 만날 뿐이다’(예레 17, 6 참조). 그들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짓는 사람(마태 7, 24-27 참조)과 같다. 그들은 홍수 한번으로 ‘자신이 믿던 의지처’를 몽땅 잃어버릴 것이다. 진정 불행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상실한 사람, 그래서 ‘가난한 자들’이다. 나는 어느 부류에 속하는 사람인가? |
행복하여라 가난한 이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니-김순곤 신부님 /2007.02.11
2007. 2. 12. 오전 10: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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