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2.7.수
| 마르코 복음 7장 14-23절 | ||
|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 ||
| 사랑의 소명 이정호신부 | ||
| 유다인들의 정결 예식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음식이나 사람 등 부정함을 피하는 것은 죄로 물든 세상과 구분되어 오로지 하느님께만 속한 특별한 민족이라는 자각을 심어주었고 그들의 신앙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죄인 취급하였으나 이것이 지나쳐 그 본래 의미를 망각하게 하였습니다. 우리 천주교인들은 이러한 폐쇄적인 구분을 넘어 넓은 마음으로 하느님이 만드신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세상에 파묻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는 신앙의 삶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떻게 드러내고 있습니까? 미사참례와 기도, 선행 등의 외적인 실천뿐만이 아니라 그 실천을 이끌어내는 마음속 사랑의 자세가 그것입니다. 마음에 간직된 것은 말로나 행동으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선한 지향과 자비로운 사랑을 품고 기쁨의 삶을 살아가고자 할 때 하느님의 빛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미 개신교인을 포함하여 우리나라 인구 세 명 중의 한 명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인데 우리 사랑의 소명을 충실히 살아가고자 한다면 세상이 좀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 ||
| 이해 | ||
| 매운 날씨에 대전역에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이불 몇 채 가지고 간 것은 금방 다 나누어지고 김밥이 조금 남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벙어리 아저씨(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왠지 그분과 거리감이 많이 느껴집니다)는 김밥을 못 먹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손짓을 하시며 같이 가보자고 하셨습니다. 함께 따라간 대전역 광장 맞은편 후미진 곳에는 칼바람을 종이박스로 막아 놓고 옷을 뒤집어 쓴 채 꼼짝도 않고 눈만 내놓고 있는 사람, 죽은 듯이 엎어져 있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벌써 벙어리 아저씨는 이들을 위해 우리가 가져간 담요 하나를 갖다놓았습니다. “괜찮아요? 추운데.” 그러나 아무런 대꾸도 없습니다. 벌써 술들을 한잔 했나봅니다. 이럴 때 참 화가 납니다. 세상에 절망하고 마음을 닫아버린 채 술에 찌들어 가다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꼭 나오니까요. 그 소식을 들을 때마다 이건 사회가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 저지르고 있는 우리들의 살인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최근에 듭니다. … 벙어리 아저씨와 다시 돌아와서 아저씨 편으로 김밥을 전해드렸습니다. 아저씨는 체격이나 표정은 격투기선수처럼 단단하고 커다란데 그 마음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습니다. 당신도 한 끼 식사를 해결하기 만만치 않은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남을 챙겨주는 마음이 살뜰합니다. 오히려 당신 자신이 장애인으로 버림받고 고단한 그 상처가 남을 배려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작용했을까요? 그분은 칼바람 맞으며 노숙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이불을 더 준비해달라고 손짓으로 이야기하십니다. 비단 장애인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못나고 부족한 점이 때로는 약점이 될 수도 있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못나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세종 | 김밥나눔 회지 ‘둘이나 셋’ 제85호에서 | ||
